음악과 함께 자유로이 움직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힙합 댄서 5000. 지금까지 증명해낸 수많은 무대와 상패 뒤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달려온 시간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만의 균형을 지키며, 짙은 색과 울림을 전하고 있는 그의 여정을 만나보자.
인터뷰 上
나만의 정답, 나만의 이야기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오 : 저는 광주에서 춤추고 있고, 빛고을 댄서스(BITGOEUL DANCERS)와 엠비셔스(MBITIOUS)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트릿 댄서 오천이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오 : 심사도 다니고, 간간이 대회 참가도 하고 있고, 수업도 하고. 그런 식으로 춤추는 삶을 계속 살고 있습니다.
융 : 그럼, 이 춤 여정의 시작이죠. 처음 춤을 추게 된 계기부터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가 알기로는 예능 프로그램의 ‘댄스 신고식’을 보고 춤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오 : 맞아요. 중학교 2학년쯤, 15살에서 16살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살던 곳이 대도시는 아니고, 곡성군의 읍, 면, 리 정도 되는 마을이었거든요. 전체 가구 수가 60가구 정도인 동네라 춤 학원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었죠. 또, 그 시기에는 ‘학원을 찾아가서 배워야겠다’라는 생각 자체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따라 해보고, 동아리에서 친구들이랑 K-POP 커버 같은 걸 하면서 지냈어요.
융 : 그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생 때 스트릿 장르를 접하게 되신 건가요?
오 : 그렇죠. 활동을 하던 중에 운 좋게 한 댄스팀의 막내로 들어가게 됐거든요. 제가 살던 곳이 그나마 광주랑 가까웠는데, 광주 ‘밀리오레’라는 쇼핑몰 센터에서 매주 공연을 하는 댄스팀이 있었어요. 팀원 중 한 분이 제 고등학교 선배님이셨고, 동아리 활동도 같이 했었는데. 그 선배가 “너 이렇게 춤에 관심 많으면 한번 와서 배워보는 게 어때?”라고 권유해 주셔서. 연습생처럼 팀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형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공연도 했었죠.

융 : 그렇군요. 팀에서는 주로 어떤 장르를 배우셨나요?
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힙합이었는데. 근데 사실 저를 가르쳐 주신 형들도 학원에서 배우신 게 아니었어서. 막 말도 안 되는 안무도 알려주셨다가, 웨이브 알려주셨다가. 그냥 이것저것 공연에 쓸만한 무언가들을 계속 알려주셨던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힙합’이라는 장르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오 : 제가 배운 공연 안무가 힙합이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그냥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무렵에 제가 되게 존경하던 팀 형이 팝핑을 혼자 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 장르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그 형한테 배우기 시작했고, 한 3년 정도 팝핑을 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저희 팀이 공연 중심이다 보니까, 스트릿 씬에 대해서는 잘 몰랐죠.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무대 올라가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런데 팝핑을 하면서 스트릿 댄스 대회에도 참가하게 됐고. 그제서야 다른 댄서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도 알게 되면서, '아, 나는 진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하고 깨달았죠. 근데 한편으론, 팝핑으로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대회에 나가면 계속 떨어지니까. ‘내가 재능이 없는 건가?’싶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힙합 배틀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한번 나가봤어요. 딱히 뭘 제대로 배운 건 아니고, 독학하면서 팀 형들이랑 교류하고. 4일 정도 연습하고 재미 삼아 나갔는데, 갑자기 4강까지 올라간 거예요. 그때 약간 ‘어? 이거다!(웃음)’싶었죠. ‘이거, 가성비 괜찮은데?’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힙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융 : 와, 올라가면서도 얼떨떨한 느낌이셨을 것 같아요.
오 : 네, 진짜 지식도 거의 없었죠. 그 배틀에 어떻게 나가게 됐냐면,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던 힙합 댄서는 딱 한 분, 지학수 형님이었거든요. 제 선생님 중 한 분이신데. 딱 배틀 공지를 보는데, 심사위원에 지학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건 그냥 나가봐야겠다.'싶어서 참가한 거죠.
배틀이 시작되고, 올라가면서도 '이게 지금 맞나?'하고 있고. 또, 제가 누군가와 계속 붙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상대가 무대에 나올 때마다 응원이 엄청 터지는 거예요. 저는 그냥 '아, 친구들 진짜 많나 보다.'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그때 붙었던 분들이 제이락 형, 마리 누나 이런 분들이었더라고요. 모르면 용감해질 수 있잖아요.
융 : 그렇죠. 알면 더 위축되는 게 있는데.
오 : 맞아요. 그래서 오히려 겁 없이 할 수 있었던. 그러고 이제 몇 년 뒤에 ‘아, 그 사람이 제이락 형이었구나. 나 진짜 멍청했네(웃음).’ 이런 생각을 했었죠.
융 : (웃음)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그럼, 딱 그 힙합 배틀이 계기가 된 거네요.
오 : 네, 물론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 저는 팝핑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춤을 자유롭게 추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실력이 받쳐주질 않아서 계속 어떤 틀에 갇힌 느낌으로 췄던 것 같아요.
사실 힙합을 접하게 된 것도 프랑스의 ‘레스 트윈스(Les Twins)’라는 댄서들을 보게 되면서였는데. 그분들은 팝핑에서 쓰는 요소들도 자유롭게 섞어서 추는데, 전혀 얽매이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힙합’이라고 부르니까. 왜냐하면 제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힙합은 한국에서 봐왔던 스타일처럼 딱 정형화된 느낌의 춤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자유롭게 해도 힙합이라고 할 수 있구나.’싶었던 거죠. 그래서 '어? 그럼 나도 힙합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계속 이어온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오천님이 생각하시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오 :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것. 물론 저도 이걸 계속 해오면서 시작할 때와 다르게 힙합을 정의하려고 하고, ‘이건 좀 받아들이기 힘든데?’라는 것도 생기긴 하는데. 처음 힙합을 접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제일 큰 매력이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그냥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해도 내가 이걸 ‘힙합스럽게’ 풀어낼 수 있으면 그 자체로 힙합이 될 수 있다는 거.
음악도 계속 디깅을 하면서 춤 시작 초반과 지금 접하고 있는 힙합 음악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것도 힙합인가?’싶을 정도로 경계가 애매하고, 헷갈리는 부분도 많은데. 어쨌든 그 자체가 또 매력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선생님들 수업을 들을 때도 자주 듣는 얘기가 있어요. “힙합이 제일 어려운 장르다.”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이 문화 자체가 애초에 각 요소가 섞여서 시작됐고. 지금도 뭘 섞어도 다 힙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제일 어렵다고요. 그런 가르침도 받다 보니 더 그렇게 생각되는 것 같아요.
융 : 맞아요. 틀이 없는 자유로움이 큰 매력 같은데요. 그럼에도 오천님이 힙합에서 중시하시는 요소들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오 : 처음에는 동작적인, 바운스 같은 요소들 위주로 생각했던 시기가 있는데. 요즘 심사를 보러 다니거나 참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봤을 때 그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엄청 바운스를 타는데도 그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바운스를 하나도 안 타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완전 ‘힙합이다.’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분들을 몇 번 마주했거든요.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퍼스널리티인 것 같아요. 뭘 하더라도 진짜 저 사람밖에 못 할 것 같은?
융 : 춤을 출 때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오 : 저는 제 상태. 저도 이걸 너무 잘하고 싶어서 동작적으로 바운스도 더 해보고 스텝같은 어떤 정리돼 있는 동작들 위주로 연습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약간 내가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은 누군가가 정립해 놓은 거를 하게 되는 건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좀 상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막 기분에 대한 것도 있고, 아니면 그 시기에 느끼는 감정선이라든지 어떤 시기에 따라서도 그렇고. 어떨 때는 되게 파이팅 넘치고, 뭔가 강렬하게 추고 싶은 시기도 있는 반면에 어떨 때는 서정적으로만 추고 싶을 때도 있고. 아니면 그냥 ‘별로 열심히 하기 싫은데?’이럴 때도 있고. 그냥 제가 좀 온전해야 춤도 잘 춰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은 제 상태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융 : 온전한 자신의 상태. 좋네요. 그럼, 오천님이 보는 본인의 춤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오 : 뭔가 단어로 정리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정도? 제가 느끼는 감정이나 감성에 따라서 그때 듣는 노래들도 많이 달라지고. 지금은 또 지금만의 감성대로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있고. 그런 노래들을 쇼케이스나 무대에서 항상 선택하게 되고. 그럼 춤도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지기 때문에. ‘그 시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융 : 오, 좋은데요(미소). 그럼, 이렇게 오천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움직임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 과정도 되게 궁금한데요. 굉장히 독보적이기도 하고, 따라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오 : 우선 초반에 팝핑을 하다가 힙합을 하게 됐을 때에는 단순히 그 당시에 한국 힙합 씬에서 저처럼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다고 받아들여 주시기도 했고, 반대로 ‘이게 힙합인가?’ 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었고. 근데 스스로 개인의 기준을 두고 생각했을 때도 ‘신선한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그 신선함에만 포커스가 가서. ‘뭘 섞어야 신선할까?’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잊혀지고. 자료 자체도 특이한 거 하는 사람들 것만 보고. 그러다가 이렇게 표현하면 약간 적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아무 감정 없이 표현하자면, 그냥 저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들의 의견을 많이 맞닥뜨리고? 저의 춤에 대한 고민을 오랜 기간 했었죠.
그러다가 2015년에 뉴욕의 <STEP YA GAME UP>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그게 브롱스에 첫 힙합 파티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의 바로 한 블록 옆에서 열리는 배틀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때 가서 우승을 해버리게 된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되게 기분도 좋았는데, 물음표가 뜬 게. 나는 한국에서 내내 힙합이 아니라는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힙합의 본토에 와서 갑자기 우승을 하고, 심지어 그때 심사를 보셨던 분이 힙합의 빼놓을 수 없는 뿌리를 구축해 오신 분이셔서 더 약간 ‘이게 뭔가?’싶었죠.

그리고 원래 제가 붐뱁 노래를 진짜 싫어했거든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되게 힙합의 본질 같은 거잖아요. 근데 제가 신선함만 좇느라 이걸 계속 밀어냈었는데.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노래가 확 좋아지게 된 계기를 겪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그럼,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바운스 같은 것들도 조금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죠.
왜냐하면 지금 이 노래가 싫었다가 좋아진 것처럼 만약 해봤을 때 싫다고 느낀 거면 왜 싫은지 좀 더 정확하게 알 것이고. 해봤다가 좋은 거면 오히려 땡큐인 거니까. ‘여기서 인정받았으니 됐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 보다는 하기 싫은 것도 섞어보면서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아 보고 싶다.’가 된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와서 막 못하는 런닝맨 해보고, 바운스 계속 해 보려고 하고. 그런 식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융 : 와,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멋있네요. 오히려 밀고 나가실 수 있잖아요.
오 : 그렇죠(웃음). 감사합니다.
융 : 또, 앞서 근황에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수업과 심사를 많이 다니고 계신데요. 티칭을 하실 때나 저지를 보실 때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오 : 세밀한 부분까지 매번 똑같지는 않지만, 중점적으로 포커스를 두는 건 ‘음악‘과 ‘퍼스널리티‘인 것 같아요. 사실 배틀 때는 더더군다나 어떤 음악을 만날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이 퍼스널리티가 너무 강해버리면 사실 어떤 노래가 나와도 그냥 본인 것만 하게 되고? 노래와 교류가 안 되니까. 근데 진짜 퍼스널리티가 좋은 사람들은 어떤 노래가 나와도 음악과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수업할 때도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나 요소들을 알려주면서도 그 요소를 꼭 이렇게만 풀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같이 전달하죠. 이것도 뭐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예전에 형들한테 배웠을 때는 정해진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바운스 할 때는 팔을 이렇게 잡아야 한다든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데 하고 있는 거죠. 웨이브도 꼭 손가락부터 들어가야 되고. 근데 이게 큰 오류인 게 해외에서 춤을 만들어오신 파이오니어(pioneer)분들도 웨이브라는 것 자체가 그냥 흐르는 형상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라고 하시거든요. 한국에서는 이걸 너무 교육적으로 받다 보니까. 근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걸 조금 깨고 싶은 거죠. “네가 생각하는 웨이브를 해야 해.“ 그리고 이제 노래랑 같이 움직여보라고 하는. 이런 것들 위주로 수업하고 있고. 배틀도 그런 식으로 심사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융 : 퍼스널리티가 있으면서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분께 손이 가는.
오 : 그럼, 진짜 너무 멋있죠(웃음). 바로 가죠.

융 : (미소). 그럼,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이신가요?
오 : 춤적으로는 아까 학수 형도 말씀드렸지만 호진이 형이나 다른 외국에 계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 리듬 게이트형이라든지 드랍 형이라든지 제 위에 계신 선배님들 보면서도 많은 영감을 받게 되고. 요즘 한국에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동생들도 그렇고. 음악에서도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아요. 시기별로 딱 좋아하는 트렌드가 정해진 건 아닌데, 근래에는 R&B를 진짜 많이 듣고 있거든요. 배틀 때는 어쩔 수 없이 배틀 비트들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다 보니까 춤도 그렇게 나가는데. 혼자 출 때는 굳이 그런 노래를 들을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냥 좋아하는 곡 듣고, 춤추면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이렇게 영향을 받으시는 곳 중 하나인 음악. 오천님하면 ‘뮤직컬리티‘라는 키워드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런 음악의 디테일함을 표현하기 위한 노하우나 연습방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오 : 방식이 따로 있지는 않은데, 노래에 관심이 생기게 되면 관련된 웬만한 자료를 다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나오는 배틀 비트는 관련된 역사를 찾기 힘들지만, 뭐 그 노래로 했었던 다른 댄서의 배틀을 본다든지? 아니면 비트를 만든 비트 메이커의 다른 앨범을 들어본다든지. 제가 즐겨 듣는 R&B같은 건 그 가수의 라이브 무대나 뮤직비디오나 아니면 요즘은 앨범 메이킹 과정을 찍는 다큐멘터리도 운 좋으면 몇 개씩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찾아보고? 표현을 조금 더 잘하고 싶으면 아무래도 언어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에 해석도 해보게 되고. 원래는 Chat GPT를 잘 쓰지도 못하고, 필요성도 못 느꼈었는데. 이것 때문에 결제했거든요. “이거 번역해 줘.“하면서. 또, 이게 좋은 게 슬랭같은 것도 다 설명해 주더라고요. 이 얘기가 무슨 뉘앙스인지. 그거를 기억하고 있다가 노래를 듣게 되면 또 다르게 들리게 되고. 그냥 들었을 때랑 완전히 이해하고 출 때랑 많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좀 해보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노래 디깅을 하는 방식도 있으신가요?
오 : 사실 그냥 평소에 디깅을 많이 하는 습관을 들여놓아서. 시골에서 살 때부터 노래 모으는 걸 너무 좋아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도 없었고. 노래 하나 받으려면 진짜 별의별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모은 음악들 자체가 되게 자산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요즘은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솔직히 찾으려면 금방 다 찾잖아요. 배틀 DJ 준비하면서도 맘 먹으면 하루에 200개까지도 찾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그런 식으로 그냥 혼자 심심하면 디깅하는 것 같아요.
융 : 루틴처럼.
오 : 네. 요즘은 또 어플마다 요일별로 재생 목록을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확인해 보면서(미소).
인터뷰 下
함께 걷고, 서로를 비추며
융 : 그럼, 다음 질문으로 춤의 어떤 면이 오천님을 계속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으신가요?
오 : ‘즉흥성‘과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 것 같아요. 즉흥적으로 제 이야기를 하고, 이걸 또 사람들이 봐주시고. 또, 뭔가 새롭게 해석이 되고. 저는 이런 점이 예술의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거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내용이구나.‘생각했는데, 감독 인터뷰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가 아예 잘못 짚은 거죠. 근데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재미를 느낀 거니까. 이런 점과 더불어서 제 움직임이 어떤 형태로든 좋은 영향력이 되었다는 걸 보고, 들었을 때. 그 자체가 저를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팀이나 활동명으로 정의되지 않는 ‘신승훈‘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오 : 굉장히 말이 많고? 개그 욕심도 많고(웃음). 그리고 되게 호기심도 많고. 근데 그에 비해 집중력은 또 낮고. 제가 ENFP거든요? 그 유형의 특징을 보고서 진짜 완전 찔렸던 게, 하고 싶은 게 막 5조 5천 개. 근데 이루어지는 거는 10개도 안 된다(웃음). 딱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게으릅니다.
융 : 춤 외의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 편이세요?
오 : <블리치>라는 만화를 되게 어렸을 때 봤었는데. 제가 완결 안 나는 거 보는 걸 좀 싫어해요.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원피스도 안 봤거든요. 아무튼 블리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서 봤는데. 그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또 뭐가 나왔더라고요. 어제까지 나온 것 또 다 봤고? 그거 안 할 때는 요즘 음악 만드는 거에 관심이 생겨서 조금씩 해 보고 있습니다.
융 : 와, 음악 제작까지.
오 : 제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서(웃음). 그냥 좀 장난 삼아 해보고 있고. 평소에는 바깥에 나가서 멍때리는 거 되게 좋아해요. 어느 순간 되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뭔가 너무 머리 아픈데?’라고 느낄 때. 한창 그럴 때는 막 그냥 갑자기 절 찾아가서 거기 정자에 앉아가지고 한 2시간 있다가 오고. 그런 되게 고요한 거 즐기는 걸 좋아해요.
융 : 맞아요. 자기 자신과의 시간도 되게 중요하죠(미소).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오 : 요즘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은 제 주변에 진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느낄 때. 춤적인 부분 이외에 살면서 만난 인연들도 많지만, 지금은 춤으로 인해서 만난 사람들이 더 많아졌거든요. 진짜 오래 봐온 분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봐온 분들도 계시니까. 거의 16년, 17년? 아니면 빛고을 댄서스 친구들처럼 제가 뭐 없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같이 봐온 친구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되게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춤추면서 많이는 아니지만 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낀 계기가 몇 번 있었는데. 제가 중국에 워크샵 일정을 하러 갔을 때 어떤 한 분이 수업 끝나고 “사진 좀 찍어줘.”이러시면서 막 여러 번 요청하는 거예요. 근데 그때 너무 힘들었어서. ‘아, 왜 이러시지?’생각하면서 “이따 해줄게.”하고 좀 쉬려고 하는데, “나 진짜 너 보려고 11시간 걸려서 왔다.”하시는 거예요. 거기에서 1차 띵을 했죠.
근데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알았어, 다음에 또 봐.”이랬는데 그분이 “내가 사실 지금 암에 걸려가지고, 진짜 너를 다음에 또 보고 싶은데,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왔다.”라는 거예요. 제가 거기에서 완전 진짜 머리가 하얘져가지고. 약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되게 오묘한 감정을 많이 느꼈죠. ‘내 수업을 듣겠다고, 그 11시간을 와서. 내가 뭐라고.‘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과 비슷한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와, 진짜 행복한 인생이다.’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
그리고 물론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지만 저도 가정사가 좀 있어서 많이 힘들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거의 막 혼자 나와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때 얼마나 힘들었었냐.’를 생각하면 지금은 진짜 행복하다고 느끼죠.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좋아하는 동생들 밥이라도 한 번 더 사줄 수 있고. 아니면 지금 이런 인터뷰도 사실 솔직히 제가 뭐라고. 이렇게 오셔서 제 이야기를 담아주시는 것 자체도 되게 행복한 일이죠.
융 : 너무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 많네요.
오 : 네, 저도 어떤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진짜 한 번씩 머리를 딱 치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오천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오 : 예전에는 슬럼프가 오면 그냥 춤에 관련된 모든 걸 일절 차단했어요. 20대 초중반쯤? 뭔가 어느 시점에 왔었을 때 노래 듣는 것도 싫고, 움직이는 것도 싫고, 연습실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진짜 내 삶. 춤을 제외한 온전한 내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집에서 하루 종일 밥이나 해 먹으면서 예능 같은 거 보고. 잠 진짜 자고 싶은 만큼 계속 자보고. 어디 가고 싶은 데 가보고. 피시방 가서 날도 세워보고. 근데 사실 별로 좋게 극복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느끼긴 했어서.
요즘은 슬럼프가 안 오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한 3년 전인가?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춤은 안 추는데, 아까 말씀드렸던 디깅을 한다든지 그냥 뮤직비디오 찾아보든지 아니면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 같은 거 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슬럼프가 왔었던 이유는 다 뭔가 지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요?
오 : 대부분은 그랬어요. 근데 제 상태가 불완전했던 시기도 있었고. 그리고 그냥 제가 실력이 없어서? 제가 막 파운데이션을 엄청 열심히 연습했던 댄서는 아니었어서. 기본기가 없으면 신선함만으로 버티는 게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그 고비가 너무 자주 오는 거예요. 막 다른 동갑내기 친구들은 계속 되게 재미있게 연습하는데? 저는 한 번 슬럼프가 오면 한 6개월 동안 하기 싫어졌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게 그냥 기본기가 안 돼 있어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본기만 계속 연습하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슬럼프는 좀 줄어들었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지침으로 온 게 맞죠(웃음).
융 : 맞아요. 진짜 뭔가 직면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직면해야 될 부분은. 피해도 어차피 마주하게 되니까요.
오 : 그렇죠.
융 : 이런 많은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하시고, 활동하시며 많은 댄서들에게 정말 좋은 영향력을 주고 계신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오천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오 : 예전에는 진짜 유명해지고 싶고, 이걸로 빨리 돈을 벌고 싶고. 되게 절실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감사하게도 많이 찾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만큼 이걸 열심히 안 하기에는 너무 배부른 것 같아서(웃음). 그런 초심의 마인드가 원동력이 되고. 이제는 책임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누가 와서 “네가 이 씬을 책임져야지.“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제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신념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융 : 초심과 책임감. 좋네요(미소). 그럼, ‘5000‘이라는 댄서 혹은 ‘신승훈‘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 : 이건 조금 엄청 나중의 일일 것 같긴 한데.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 같아요. 물론 뭐 잘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꿈인데. 그런 거 이외에도 그냥 제 부재가 엄청 컸으면 좋겠어요.
융 : (당황하며) 벌써...
오 : (웃음) 막 벌써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요즘 뭔가 어떤 인물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을 좀 많이 해 보고 있거든요. 제 인생의 어떤 골든타임. 물론 지금도 골든 타임이지만, 되게 성장하면서 마주했던 것들이 있잖아요. 예능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그 시대에 완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들도 있고? 제가 진짜 좋아했었던 연예인 분들이라든지 아니면 스포츠 스타들도 돌아가신 분들이 너무 많고. 아티스트들도 그렇고. 그래서 진짜 ‘이게 뭔가 되게 공허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그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저는 사실 농구의 빅팬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세계 팬들의 반응들이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지?’ 그러면서.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뭐, 사실 제가 막 100% 착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해 안 주고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는 걸로 인해서 그냥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든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게 목표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융 : 좋네요.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오 : 와, 그렇네요.
융 : 하지만 그날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 : (웃음) 그렇죠. 좀 많이 늦게 왔으면 하는. 그걸 제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엄청 오래 하고 싶고? 그럴 거고(미소).
융 : 좋네요. 그럼, 이어서 꼭 올해가 아니더라고 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으신지.
오 : 요즘 들어 유럽 쪽을 나가서 증명해 보고 싶은 욕심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어요. 20대 초중반 때까지만 해도 그런 욕심이 엄청 셌거든요? 근데 그때는 뭔가 ‘내 춤으로써 가서 승부를 보고 싶다.’라는 개념보다 ‘얼른 빨리 네임드 댄서가 됐으면 좋겠다.’같이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은 게 목표였죠. 근데 그 불이 한 번 확 지펴졌다가 꺼졌던 게, ‘왜 유럽에 나가서 인정을 받아야 되지? 한국도 잘 하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인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만 뭔가 이상하게 아시아권,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힙합은 되게 약하다는 식으로 치부되는 게 싫어서.
‘힙합이랑 문화는 틀린 게 없고, 다른 거라면서 왜 이건 틀린 거라고 얘기하지?’그런 생각을 하다가. 요즘은 오히려 되게 순수하게 ‘다시 내 춤으로 내 스타일로 한번 가서 부딪혀 봤을 때 반응이 어떨까 되게 궁금하다.’그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시기여서. 그게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춤적으로는.
융 : 좋네요. 개인적으로 오천님이 썸머 댄스 포에버(SUMMER DANCE FOREVER)에 참가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큽니다.
오 : 네, 너무. 내년에는 한번 도전해 보려고요.
융 : 너무 기대되네요(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오 : 사실 춤에 대한 것들은 각자 그들이 알아서 잘하실 거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라.”라기보다 그냥 본인의 상태를 잘 체크하면서 재밌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막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 시대가 변해서 새롭게 형성된 흐름이라고 해야 되나? 뭔가 춤보다는 인간관계. 예를 들어 유명한 사람하고 막 친해지고 싶은 것처럼. 물론 저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진짜 어떤 사람과 친해져 보고 싶어서 가서 괜히 막 말도 붙여보고 했던 시기가 있어서. 근데 너무 그거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이걸 겪어서 더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게 평생 가지는 않거든요. 내가 얘랑 친하고, 지금 DM하고. 유명한 애들하고만 뭔가를 하려고 하고. 근데 그게 중요할까? 또 되게 아이러니한 게 키즈 댄서들 사이에서도 약간 그런 상황이 보이더라고요.
융 : 아, 정말요?
오 : 키즈 댄서 애들도 각자 레벨들이 많이 다르고. 잘하는 친구들이 계속 입상을 할 테니까. 저도 멋있는 친구가 있으면 당연히 사귀고 싶고. 그건 좋은데. 주변 환경 자체가 “멋있는 애들하고만 다녀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게 되게 별로인 것 같아요. 그냥 진짜 그 사람과 사람 간의 속을 보고 교류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있고요.
그리고 이건 단순히 그냥 동생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인데. 진짜... 스탠스를 잘 잡았으면 좋겠어요. 방금 말씀드린 거랑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시기별로 자신이 멋있어 보이고 싶고. 쿨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다 있잖아요. 이해는 하는데, 그 쿨함과 건방짐의 경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제 사실 마냥 어린 편은 아니어서 ‘이 친구가 악의적인 의도는 없겠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서 씌워진 이미지는 사실 10년이 지나도 벗겨내기가 힘들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도.
예를 들어 한 친구에게 제가 그런 이미지가 씌워져서 ‘얘는 좀 건방진데?’하고 한참을 안 봤어요. 그러다가 한 5년 지나서 봤을 때 이 친구가 전과는 달라졌더라도 이미지가 너무 세게 박혀 있으면 그걸 벗겨내기가 힘들더라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겸손을 떨라는 건 아닌데. 사실 저는 겸손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보거든요.
본인이 진짜 춤을 잘 추면 오히려 더 ‘와, 얘는 잘 추는데 되게 겸손하네.‘라는 인식이 드니까. 제가 해외에 나가서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겪어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새로운 인물들이 유입이 되고. 잘하는 댄서들이 많아지잖아요. 근데 항상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조금 그때 잘 나간다 싶으면 약간 턱부터 이렇게 치켜들고 오는 친구가 있어요(웃음). 물론 그 친구들이 진짜 자기보다 더 유명한 댄서 앞에 가서는 그렇게 못하죠. 근데 저는 이제 상대적으로 엄청 유명한 댄서들보다는 정보력도 없고, 그 정도의 실력도 아직 아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저한테 턱을 치켜들고 오면서 딱 첫인상을 줬다가, 나중에 뭔가 제가 행사에 오거나이저라는 걸 알게 되면 갑자기 턱이 내려가더라고요. 막 갑자기 “브로~“ 이렇게 되니까. 제가 그걸 너무 싫어해서.
이건 저랑 관계를 좋게 갖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그냥 필요에 의해서. 능력에 의해서 그런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아는 동생들은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친구들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겸손할 때는 좀 겸손했으면 좋겠고, 그냥 쿨해 보이고 싶을 땐 그냥 쿨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안 건방져지고.
융 : 정말 경험에서 나오신 말씀이라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오 : 네, 뭐 화난 건 아니고요(웃음). 그냥 그런 얘기를 너무 해주고 싶었는데, 이 감사한 자리를 빌려서 좀 말씀을 드려봤습니다.
음악에 녹아든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하며,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해 온 5000. 삶의 어느 자리에서든 흔들림 속에 중심을 찾아내고, 오히려 그 속에서 단단한 울림을 만들어낸 사람. 춤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그의 여정에 따스한 시선과 공감, 진심 어린 응원이 머무르길. 그의 춤이 오래도록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오천
음악과 함께 자유로이 움직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힙합 댄서 5000. 지금까지 증명해낸 수많은 무대와 상패 뒤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달려온 시간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만의 균형을 지키며, 짙은 색과 울림을 전하고 있는 그의 여정을 만나보자.
인터뷰 上
나만의 정답, 나만의 이야기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오 : 저는 광주에서 춤추고 있고, 빛고을 댄서스(BITGOEUL DANCERS)와 엠비셔스(MBITIOUS)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트릿 댄서 오천이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오 : 심사도 다니고, 간간이 대회 참가도 하고 있고, 수업도 하고. 그런 식으로 춤추는 삶을 계속 살고 있습니다.
융 : 그럼, 이 춤 여정의 시작이죠. 처음 춤을 추게 된 계기부터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가 알기로는 예능 프로그램의 ‘댄스 신고식’을 보고 춤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오 : 맞아요. 중학교 2학년쯤, 15살에서 16살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살던 곳이 대도시는 아니고, 곡성군의 읍, 면, 리 정도 되는 마을이었거든요. 전체 가구 수가 60가구 정도인 동네라 춤 학원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었죠. 또, 그 시기에는 ‘학원을 찾아가서 배워야겠다’라는 생각 자체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따라 해보고, 동아리에서 친구들이랑 K-POP 커버 같은 걸 하면서 지냈어요.
융 : 그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생 때 스트릿 장르를 접하게 되신 건가요?
오 : 그렇죠. 활동을 하던 중에 운 좋게 한 댄스팀의 막내로 들어가게 됐거든요. 제가 살던 곳이 그나마 광주랑 가까웠는데, 광주 ‘밀리오레’라는 쇼핑몰 센터에서 매주 공연을 하는 댄스팀이 있었어요. 팀원 중 한 분이 제 고등학교 선배님이셨고, 동아리 활동도 같이 했었는데. 그 선배가 “너 이렇게 춤에 관심 많으면 한번 와서 배워보는 게 어때?”라고 권유해 주셔서. 연습생처럼 팀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형들한테 배우기도 하고, 공연도 했었죠.
융 : 그렇군요. 팀에서는 주로 어떤 장르를 배우셨나요?
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힙합이었는데. 근데 사실 저를 가르쳐 주신 형들도 학원에서 배우신 게 아니었어서. 막 말도 안 되는 안무도 알려주셨다가, 웨이브 알려주셨다가. 그냥 이것저것 공연에 쓸만한 무언가들을 계속 알려주셨던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힙합’이라는 장르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오 : 제가 배운 공연 안무가 힙합이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그냥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무렵에 제가 되게 존경하던 팀 형이 팝핑을 혼자 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 장르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그 형한테 배우기 시작했고, 한 3년 정도 팝핑을 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저희 팀이 공연 중심이다 보니까, 스트릿 씬에 대해서는 잘 몰랐죠.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무대 올라가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런데 팝핑을 하면서 스트릿 댄스 대회에도 참가하게 됐고. 그제서야 다른 댄서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도 알게 되면서, '아, 나는 진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하고 깨달았죠. 근데 한편으론, 팝핑으로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대회에 나가면 계속 떨어지니까. ‘내가 재능이 없는 건가?’싶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힙합 배틀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한번 나가봤어요. 딱히 뭘 제대로 배운 건 아니고, 독학하면서 팀 형들이랑 교류하고. 4일 정도 연습하고 재미 삼아 나갔는데, 갑자기 4강까지 올라간 거예요. 그때 약간 ‘어? 이거다!(웃음)’싶었죠. ‘이거, 가성비 괜찮은데?’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힙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융 : 와, 올라가면서도 얼떨떨한 느낌이셨을 것 같아요.
오 : 네, 진짜 지식도 거의 없었죠. 그 배틀에 어떻게 나가게 됐냐면, 그 당시 제가 알고 있던 힙합 댄서는 딱 한 분, 지학수 형님이었거든요. 제 선생님 중 한 분이신데. 딱 배틀 공지를 보는데, 심사위원에 지학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건 그냥 나가봐야겠다.'싶어서 참가한 거죠.
배틀이 시작되고, 올라가면서도 '이게 지금 맞나?'하고 있고. 또, 제가 누군가와 계속 붙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상대가 무대에 나올 때마다 응원이 엄청 터지는 거예요. 저는 그냥 '아, 친구들 진짜 많나 보다.'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그때 붙었던 분들이 제이락 형, 마리 누나 이런 분들이었더라고요. 모르면 용감해질 수 있잖아요.
융 : 그렇죠. 알면 더 위축되는 게 있는데.
오 : 맞아요. 그래서 오히려 겁 없이 할 수 있었던. 그러고 이제 몇 년 뒤에 ‘아, 그 사람이 제이락 형이었구나. 나 진짜 멍청했네(웃음).’ 이런 생각을 했었죠.
융 : (웃음)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그럼, 딱 그 힙합 배틀이 계기가 된 거네요.
오 : 네, 물론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 저는 팝핑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춤을 자유롭게 추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실력이 받쳐주질 않아서 계속 어떤 틀에 갇힌 느낌으로 췄던 것 같아요.
사실 힙합을 접하게 된 것도 프랑스의 ‘레스 트윈스(Les Twins)’라는 댄서들을 보게 되면서였는데. 그분들은 팝핑에서 쓰는 요소들도 자유롭게 섞어서 추는데, 전혀 얽매이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힙합’이라고 부르니까. 왜냐하면 제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힙합은 한국에서 봐왔던 스타일처럼 딱 정형화된 느낌의 춤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자유롭게 해도 힙합이라고 할 수 있구나.’싶었던 거죠. 그래서 '어? 그럼 나도 힙합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계속 이어온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오천님이 생각하시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오 :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것. 물론 저도 이걸 계속 해오면서 시작할 때와 다르게 힙합을 정의하려고 하고, ‘이건 좀 받아들이기 힘든데?’라는 것도 생기긴 하는데. 처음 힙합을 접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제일 큰 매력이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그냥 이것저것 다양한 걸 해도 내가 이걸 ‘힙합스럽게’ 풀어낼 수 있으면 그 자체로 힙합이 될 수 있다는 거.
음악도 계속 디깅을 하면서 춤 시작 초반과 지금 접하고 있는 힙합 음악의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것도 힙합인가?’싶을 정도로 경계가 애매하고, 헷갈리는 부분도 많은데. 어쨌든 그 자체가 또 매력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선생님들 수업을 들을 때도 자주 듣는 얘기가 있어요. “힙합이 제일 어려운 장르다.”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이 문화 자체가 애초에 각 요소가 섞여서 시작됐고. 지금도 뭘 섞어도 다 힙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제일 어렵다고요. 그런 가르침도 받다 보니 더 그렇게 생각되는 것 같아요.
융 : 맞아요. 틀이 없는 자유로움이 큰 매력 같은데요. 그럼에도 오천님이 힙합에서 중시하시는 요소들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오 : 처음에는 동작적인, 바운스 같은 요소들 위주로 생각했던 시기가 있는데. 요즘 심사를 보러 다니거나 참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봤을 때 그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엄청 바운스를 타는데도 그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바운스를 하나도 안 타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완전 ‘힙합이다.’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분들을 몇 번 마주했거든요.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퍼스널리티인 것 같아요. 뭘 하더라도 진짜 저 사람밖에 못 할 것 같은?
융 : 춤을 출 때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오 : 저는 제 상태. 저도 이걸 너무 잘하고 싶어서 동작적으로 바운스도 더 해보고 스텝같은 어떤 정리돼 있는 동작들 위주로 연습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약간 내가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은 누군가가 정립해 놓은 거를 하게 되는 건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좀 상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막 기분에 대한 것도 있고, 아니면 그 시기에 느끼는 감정선이라든지 어떤 시기에 따라서도 그렇고. 어떨 때는 되게 파이팅 넘치고, 뭔가 강렬하게 추고 싶은 시기도 있는 반면에 어떨 때는 서정적으로만 추고 싶을 때도 있고. 아니면 그냥 ‘별로 열심히 하기 싫은데?’이럴 때도 있고. 그냥 제가 좀 온전해야 춤도 잘 춰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은 제 상태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융 : 온전한 자신의 상태. 좋네요. 그럼, 오천님이 보는 본인의 춤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오 : 뭔가 단어로 정리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정도? 제가 느끼는 감정이나 감성에 따라서 그때 듣는 노래들도 많이 달라지고. 지금은 또 지금만의 감성대로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있고. 그런 노래들을 쇼케이스나 무대에서 항상 선택하게 되고. 그럼 춤도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지기 때문에. ‘그 시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융 : 오, 좋은데요(미소). 그럼, 이렇게 오천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움직임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 과정도 되게 궁금한데요. 굉장히 독보적이기도 하고, 따라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오 : 우선 초반에 팝핑을 하다가 힙합을 하게 됐을 때에는 단순히 그 당시에 한국 힙합 씬에서 저처럼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다고 받아들여 주시기도 했고, 반대로 ‘이게 힙합인가?’ 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었고. 근데 스스로 개인의 기준을 두고 생각했을 때도 ‘신선한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그 신선함에만 포커스가 가서. ‘뭘 섞어야 신선할까?’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잊혀지고. 자료 자체도 특이한 거 하는 사람들 것만 보고. 그러다가 이렇게 표현하면 약간 적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아무 감정 없이 표현하자면, 그냥 저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들의 의견을 많이 맞닥뜨리고? 저의 춤에 대한 고민을 오랜 기간 했었죠.
그러다가 2015년에 뉴욕의 <STEP YA GAME UP>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그게 브롱스에 첫 힙합 파티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의 바로 한 블록 옆에서 열리는 배틀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때 가서 우승을 해버리게 된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되게 기분도 좋았는데, 물음표가 뜬 게. 나는 한국에서 내내 힙합이 아니라는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힙합의 본토에 와서 갑자기 우승을 하고, 심지어 그때 심사를 보셨던 분이 힙합의 빼놓을 수 없는 뿌리를 구축해 오신 분이셔서 더 약간 ‘이게 뭔가?’싶었죠.
그리고 원래 제가 붐뱁 노래를 진짜 싫어했거든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되게 힙합의 본질 같은 거잖아요. 근데 제가 신선함만 좇느라 이걸 계속 밀어냈었는데.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노래가 확 좋아지게 된 계기를 겪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그럼,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바운스 같은 것들도 조금 공부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죠.
왜냐하면 지금 이 노래가 싫었다가 좋아진 것처럼 만약 해봤을 때 싫다고 느낀 거면 왜 싫은지 좀 더 정확하게 알 것이고. 해봤다가 좋은 거면 오히려 땡큐인 거니까. ‘여기서 인정받았으니 됐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 보다는 하기 싫은 것도 섞어보면서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아 보고 싶다.’가 된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와서 막 못하는 런닝맨 해보고, 바운스 계속 해 보려고 하고. 그런 식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융 : 와,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멋있네요. 오히려 밀고 나가실 수 있잖아요.
오 : 그렇죠(웃음). 감사합니다.
융 : 또, 앞서 근황에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수업과 심사를 많이 다니고 계신데요. 티칭을 하실 때나 저지를 보실 때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오 : 세밀한 부분까지 매번 똑같지는 않지만, 중점적으로 포커스를 두는 건 ‘음악‘과 ‘퍼스널리티‘인 것 같아요. 사실 배틀 때는 더더군다나 어떤 음악을 만날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이 퍼스널리티가 너무 강해버리면 사실 어떤 노래가 나와도 그냥 본인 것만 하게 되고? 노래와 교류가 안 되니까. 근데 진짜 퍼스널리티가 좋은 사람들은 어떤 노래가 나와도 음악과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수업할 때도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나 요소들을 알려주면서도 그 요소를 꼭 이렇게만 풀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같이 전달하죠. 이것도 뭐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예전에 형들한테 배웠을 때는 정해진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바운스 할 때는 팔을 이렇게 잡아야 한다든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데 하고 있는 거죠. 웨이브도 꼭 손가락부터 들어가야 되고. 근데 이게 큰 오류인 게 해외에서 춤을 만들어오신 파이오니어(pioneer)분들도 웨이브라는 것 자체가 그냥 흐르는 형상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라고 하시거든요. 한국에서는 이걸 너무 교육적으로 받다 보니까. 근데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걸 조금 깨고 싶은 거죠. “네가 생각하는 웨이브를 해야 해.“ 그리고 이제 노래랑 같이 움직여보라고 하는. 이런 것들 위주로 수업하고 있고. 배틀도 그런 식으로 심사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융 : 퍼스널리티가 있으면서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분께 손이 가는.
오 : 그럼, 진짜 너무 멋있죠(웃음). 바로 가죠.
융 : (미소). 그럼,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이신가요?
오 : 춤적으로는 아까 학수 형도 말씀드렸지만 호진이 형이나 다른 외국에 계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 리듬 게이트형이라든지 드랍 형이라든지 제 위에 계신 선배님들 보면서도 많은 영감을 받게 되고. 요즘 한국에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동생들도 그렇고. 음악에서도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아요. 시기별로 딱 좋아하는 트렌드가 정해진 건 아닌데, 근래에는 R&B를 진짜 많이 듣고 있거든요. 배틀 때는 어쩔 수 없이 배틀 비트들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다 보니까 춤도 그렇게 나가는데. 혼자 출 때는 굳이 그런 노래를 들을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냥 좋아하는 곡 듣고, 춤추면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이렇게 영향을 받으시는 곳 중 하나인 음악. 오천님하면 ‘뮤직컬리티‘라는 키워드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런 음악의 디테일함을 표현하기 위한 노하우나 연습방법이 따로 있으신가요?
오 : 방식이 따로 있지는 않은데, 노래에 관심이 생기게 되면 관련된 웬만한 자료를 다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나오는 배틀 비트는 관련된 역사를 찾기 힘들지만, 뭐 그 노래로 했었던 다른 댄서의 배틀을 본다든지? 아니면 비트를 만든 비트 메이커의 다른 앨범을 들어본다든지. 제가 즐겨 듣는 R&B같은 건 그 가수의 라이브 무대나 뮤직비디오나 아니면 요즘은 앨범 메이킹 과정을 찍는 다큐멘터리도 운 좋으면 몇 개씩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찾아보고? 표현을 조금 더 잘하고 싶으면 아무래도 언어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에 해석도 해보게 되고. 원래는 Chat GPT를 잘 쓰지도 못하고, 필요성도 못 느꼈었는데. 이것 때문에 결제했거든요. “이거 번역해 줘.“하면서. 또, 이게 좋은 게 슬랭같은 것도 다 설명해 주더라고요. 이 얘기가 무슨 뉘앙스인지. 그거를 기억하고 있다가 노래를 듣게 되면 또 다르게 들리게 되고. 그냥 들었을 때랑 완전히 이해하고 출 때랑 많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좀 해보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노래 디깅을 하는 방식도 있으신가요?
오 : 사실 그냥 평소에 디깅을 많이 하는 습관을 들여놓아서. 시골에서 살 때부터 노래 모으는 걸 너무 좋아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도 없었고. 노래 하나 받으려면 진짜 별의별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모은 음악들 자체가 되게 자산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요즘은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솔직히 찾으려면 금방 다 찾잖아요. 배틀 DJ 준비하면서도 맘 먹으면 하루에 200개까지도 찾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그런 식으로 그냥 혼자 심심하면 디깅하는 것 같아요.
융 : 루틴처럼.
오 : 네. 요즘은 또 어플마다 요일별로 재생 목록을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확인해 보면서(미소).
인터뷰 下
함께 걷고, 서로를 비추며
융 : 그럼, 다음 질문으로 춤의 어떤 면이 오천님을 계속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으신가요?
오 : ‘즉흥성‘과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 것 같아요. 즉흥적으로 제 이야기를 하고, 이걸 또 사람들이 봐주시고. 또, 뭔가 새롭게 해석이 되고. 저는 이런 점이 예술의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거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내용이구나.‘생각했는데, 감독 인터뷰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가 아예 잘못 짚은 거죠. 근데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재미를 느낀 거니까. 이런 점과 더불어서 제 움직임이 어떤 형태로든 좋은 영향력이 되었다는 걸 보고, 들었을 때. 그 자체가 저를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팀이나 활동명으로 정의되지 않는 ‘신승훈‘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오 : 굉장히 말이 많고? 개그 욕심도 많고(웃음). 그리고 되게 호기심도 많고. 근데 그에 비해 집중력은 또 낮고. 제가 ENFP거든요? 그 유형의 특징을 보고서 진짜 완전 찔렸던 게, 하고 싶은 게 막 5조 5천 개. 근데 이루어지는 거는 10개도 안 된다(웃음). 딱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게으릅니다.
융 : 춤 외의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 편이세요?
오 : <블리치>라는 만화를 되게 어렸을 때 봤었는데. 제가 완결 안 나는 거 보는 걸 좀 싫어해요. 기다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원피스도 안 봤거든요. 아무튼 블리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어서 봤는데. 그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또 뭐가 나왔더라고요. 어제까지 나온 것 또 다 봤고? 그거 안 할 때는 요즘 음악 만드는 거에 관심이 생겨서 조금씩 해 보고 있습니다.
융 : 와, 음악 제작까지.
오 : 제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서(웃음). 그냥 좀 장난 삼아 해보고 있고. 평소에는 바깥에 나가서 멍때리는 거 되게 좋아해요. 어느 순간 되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뭔가 너무 머리 아픈데?’라고 느낄 때. 한창 그럴 때는 막 그냥 갑자기 절 찾아가서 거기 정자에 앉아가지고 한 2시간 있다가 오고. 그런 되게 고요한 거 즐기는 걸 좋아해요.
융 : 맞아요. 자기 자신과의 시간도 되게 중요하죠(미소).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오 : 요즘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은 제 주변에 진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느낄 때. 춤적인 부분 이외에 살면서 만난 인연들도 많지만, 지금은 춤으로 인해서 만난 사람들이 더 많아졌거든요. 진짜 오래 봐온 분들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봐온 분들도 계시니까. 거의 16년, 17년? 아니면 빛고을 댄서스 친구들처럼 제가 뭐 없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같이 봐온 친구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되게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근데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알았어, 다음에 또 봐.”이랬는데 그분이 “내가 사실 지금 암에 걸려가지고, 진짜 너를 다음에 또 보고 싶은데,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시한부 판정을 받고 왔다.”라는 거예요. 제가 거기에서 완전 진짜 머리가 하얘져가지고. 약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되게 오묘한 감정을 많이 느꼈죠. ‘내 수업을 듣겠다고, 그 11시간을 와서. 내가 뭐라고.‘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과 비슷한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와, 진짜 행복한 인생이다.’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
그리고 물론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지만 저도 가정사가 좀 있어서 많이 힘들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거의 막 혼자 나와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때 얼마나 힘들었었냐.’를 생각하면 지금은 진짜 행복하다고 느끼죠.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좋아하는 동생들 밥이라도 한 번 더 사줄 수 있고. 아니면 지금 이런 인터뷰도 사실 솔직히 제가 뭐라고. 이렇게 오셔서 제 이야기를 담아주시는 것 자체도 되게 행복한 일이죠.
융 : 너무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 많네요.
오 : 네, 저도 어떤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진짜 한 번씩 머리를 딱 치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오천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오 : 예전에는 슬럼프가 오면 그냥 춤에 관련된 모든 걸 일절 차단했어요. 20대 초중반쯤? 뭔가 어느 시점에 왔었을 때 노래 듣는 것도 싫고, 움직이는 것도 싫고, 연습실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진짜 내 삶. 춤을 제외한 온전한 내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집에서 하루 종일 밥이나 해 먹으면서 예능 같은 거 보고. 잠 진짜 자고 싶은 만큼 계속 자보고. 어디 가고 싶은 데 가보고. 피시방 가서 날도 세워보고. 근데 사실 별로 좋게 극복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느끼긴 했어서.
요즘은 슬럼프가 안 오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한 3년 전인가?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춤은 안 추는데, 아까 말씀드렸던 디깅을 한다든지 그냥 뮤직비디오 찾아보든지 아니면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 같은 거 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슬럼프가 왔었던 이유는 다 뭔가 지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요?
오 : 대부분은 그랬어요. 근데 제 상태가 불완전했던 시기도 있었고. 그리고 그냥 제가 실력이 없어서? 제가 막 파운데이션을 엄청 열심히 연습했던 댄서는 아니었어서. 기본기가 없으면 신선함만으로 버티는 게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그 고비가 너무 자주 오는 거예요. 막 다른 동갑내기 친구들은 계속 되게 재미있게 연습하는데? 저는 한 번 슬럼프가 오면 한 6개월 동안 하기 싫어졌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게 그냥 기본기가 안 돼 있어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본기만 계속 연습하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슬럼프는 좀 줄어들었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지침으로 온 게 맞죠(웃음).
융 : 맞아요. 진짜 뭔가 직면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직면해야 될 부분은. 피해도 어차피 마주하게 되니까요.
오 : 그렇죠.
융 : 이런 많은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하시고, 활동하시며 많은 댄서들에게 정말 좋은 영향력을 주고 계신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오천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오 : 예전에는 진짜 유명해지고 싶고, 이걸로 빨리 돈을 벌고 싶고. 되게 절실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감사하게도 많이 찾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만큼 이걸 열심히 안 하기에는 너무 배부른 것 같아서(웃음). 그런 초심의 마인드가 원동력이 되고. 이제는 책임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누가 와서 “네가 이 씬을 책임져야지.“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제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신념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융 : 초심과 책임감. 좋네요(미소). 그럼, ‘5000‘이라는 댄서 혹은 ‘신승훈‘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 : 이건 조금 엄청 나중의 일일 것 같긴 한데.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 같아요. 물론 뭐 잘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꿈인데. 그런 거 이외에도 그냥 제 부재가 엄청 컸으면 좋겠어요.
융 : (당황하며) 벌써...
오 : (웃음) 막 벌써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요즘 뭔가 어떤 인물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을 좀 많이 해 보고 있거든요. 제 인생의 어떤 골든타임. 물론 지금도 골든 타임이지만, 되게 성장하면서 마주했던 것들이 있잖아요. 예능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그 시대에 완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들도 있고? 제가 진짜 좋아했었던 연예인 분들이라든지 아니면 스포츠 스타들도 돌아가신 분들이 너무 많고. 아티스트들도 그렇고. 그래서 진짜 ‘이게 뭔가 되게 공허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그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저는 사실 농구의 빅팬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세계 팬들의 반응들이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지?’ 그러면서.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뭐, 사실 제가 막 100% 착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해 안 주고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는 걸로 인해서 그냥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든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게 목표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융 : 좋네요.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오 : 와, 그렇네요.
융 : 하지만 그날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 : (웃음) 그렇죠. 좀 많이 늦게 왔으면 하는. 그걸 제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엄청 오래 하고 싶고? 그럴 거고(미소).
융 : 좋네요. 그럼, 이어서 꼭 올해가 아니더라고 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으신지.
오 : 요즘 들어 유럽 쪽을 나가서 증명해 보고 싶은 욕심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어요. 20대 초중반 때까지만 해도 그런 욕심이 엄청 셌거든요? 근데 그때는 뭔가 ‘내 춤으로써 가서 승부를 보고 싶다.’라는 개념보다 ‘얼른 빨리 네임드 댄서가 됐으면 좋겠다.’같이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은 게 목표였죠. 근데 그 불이 한 번 확 지펴졌다가 꺼졌던 게, ‘왜 유럽에 나가서 인정을 받아야 되지? 한국도 잘 하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인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만 뭔가 이상하게 아시아권,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힙합은 되게 약하다는 식으로 치부되는 게 싫어서.
‘힙합이랑 문화는 틀린 게 없고, 다른 거라면서 왜 이건 틀린 거라고 얘기하지?’그런 생각을 하다가. 요즘은 오히려 되게 순수하게 ‘다시 내 춤으로 내 스타일로 한번 가서 부딪혀 봤을 때 반응이 어떨까 되게 궁금하다.’그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시기여서. 그게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춤적으로는.
융 : 좋네요. 개인적으로 오천님이 썸머 댄스 포에버(SUMMER DANCE FOREVER)에 참가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큽니다.
오 : 네, 너무. 내년에는 한번 도전해 보려고요.
융 : 너무 기대되네요(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오 : 사실 춤에 대한 것들은 각자 그들이 알아서 잘하실 거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라.”라기보다 그냥 본인의 상태를 잘 체크하면서 재밌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막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 시대가 변해서 새롭게 형성된 흐름이라고 해야 되나? 뭔가 춤보다는 인간관계. 예를 들어 유명한 사람하고 막 친해지고 싶은 것처럼. 물론 저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진짜 어떤 사람과 친해져 보고 싶어서 가서 괜히 막 말도 붙여보고 했던 시기가 있어서. 근데 너무 그거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이걸 겪어서 더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게 평생 가지는 않거든요. 내가 얘랑 친하고, 지금 DM하고. 유명한 애들하고만 뭔가를 하려고 하고. 근데 그게 중요할까? 또 되게 아이러니한 게 키즈 댄서들 사이에서도 약간 그런 상황이 보이더라고요.
융 : 아, 정말요?
오 : 키즈 댄서 애들도 각자 레벨들이 많이 다르고. 잘하는 친구들이 계속 입상을 할 테니까. 저도 멋있는 친구가 있으면 당연히 사귀고 싶고. 그건 좋은데. 주변 환경 자체가 “멋있는 애들하고만 다녀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게 되게 별로인 것 같아요. 그냥 진짜 그 사람과 사람 간의 속을 보고 교류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있고요.
그리고 이건 단순히 그냥 동생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인데. 진짜... 스탠스를 잘 잡았으면 좋겠어요. 방금 말씀드린 거랑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시기별로 자신이 멋있어 보이고 싶고. 쿨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다 있잖아요. 이해는 하는데, 그 쿨함과 건방짐의 경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저는 이제 사실 마냥 어린 편은 아니어서 ‘이 친구가 악의적인 의도는 없겠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행동으로 인해서 씌워진 이미지는 사실 10년이 지나도 벗겨내기가 힘들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도.
예를 들어 한 친구에게 제가 그런 이미지가 씌워져서 ‘얘는 좀 건방진데?’하고 한참을 안 봤어요. 그러다가 한 5년 지나서 봤을 때 이 친구가 전과는 달라졌더라도 이미지가 너무 세게 박혀 있으면 그걸 벗겨내기가 힘들더라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겸손을 떨라는 건 아닌데. 사실 저는 겸손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보거든요.
본인이 진짜 춤을 잘 추면 오히려 더 ‘와, 얘는 잘 추는데 되게 겸손하네.‘라는 인식이 드니까. 제가 해외에 나가서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겪어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새로운 인물들이 유입이 되고. 잘하는 댄서들이 많아지잖아요. 근데 항상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조금 그때 잘 나간다 싶으면 약간 턱부터 이렇게 치켜들고 오는 친구가 있어요(웃음). 물론 그 친구들이 진짜 자기보다 더 유명한 댄서 앞에 가서는 그렇게 못하죠. 근데 저는 이제 상대적으로 엄청 유명한 댄서들보다는 정보력도 없고, 그 정도의 실력도 아직 아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저한테 턱을 치켜들고 오면서 딱 첫인상을 줬다가, 나중에 뭔가 제가 행사에 오거나이저라는 걸 알게 되면 갑자기 턱이 내려가더라고요. 막 갑자기 “브로~“ 이렇게 되니까. 제가 그걸 너무 싫어해서.
이건 저랑 관계를 좋게 갖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그냥 필요에 의해서. 능력에 의해서 그런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아는 동생들은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친구들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지만. 겸손할 때는 좀 겸손했으면 좋겠고, 그냥 쿨해 보이고 싶을 땐 그냥 쿨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안 건방져지고.
융 : 정말 경험에서 나오신 말씀이라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오 : 네, 뭐 화난 건 아니고요(웃음). 그냥 그런 얘기를 너무 해주고 싶었는데, 이 감사한 자리를 빌려서 좀 말씀을 드려봤습니다.
음악에 녹아든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하며,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해 온 5000. 삶의 어느 자리에서든 흔들림 속에 중심을 찾아내고, 오히려 그 속에서 단단한 울림을 만들어낸 사람. 춤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하는 그의 여정에 따스한 시선과 공감, 진심 어린 응원이 머무르길. 그의 춤이 오래도록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