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얼음처럼 단단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을 가진 댄서 KIRIN. 자유와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움직임을 새롭게 정의하며 짙은 울림과 새로운 영감을 전하고 있다. 강인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그의 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만나 보자.
인터뷰 上
Born to Be KIRIN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키 : 안녕하세요, 프리스타일 힙합을 하고 있는 키린이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키 : 간간이 해외도 다니고, 배틀도 하고. 수업도 하면서 포켓몬 카드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융 : 좋네요(미소). 이 ‘KIRIN’이라는 댄서 네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키 : 원래는 쓰던 닉네임이 따로 있었어요. ‘Future Styler’라고. 근데 그 이름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었거든요. 네마(NEMA)라는 친구와 만들 그룹 이름을 제 인스타 닉네임으로 먼저 바꿔놓고, 프랑스의 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저한테 이름을 물어보지 않고, 거기서 전광판에 인스타 닉네임하고 사진을 그냥 띄워버린 거예요. 그래서 제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한테도 그 이름으로 인식이 된거죠.
그러고 군대를 가기 전에 이미지 변화를 줄 겸 다른 이름을 생각하다가. 제가 플레이스테이션(Play Station)에 ‘몬스터 헌터(Monster Hunter)’라는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당시에 최종 보스 몬스터가 키린이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가장 강력하고, 센 존재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정하게 됐죠.
융 : 보스 몬스터의 외형도 센 이미지인가요?
키 : 키린의 외형은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요. 일본에서 내려져 오는 영물, 약간 상상의 동물 느낌인데. 동물 말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융 : 오, 멋지네요. 이 댄서 네임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키 : 훨씬 마음에 들어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는 것도 닉네임 덕분인 것 같아서.
융 : 좋네요(미소). 춤은 어떤 경로로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키 :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비보잉(B-Boying) 동아리가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선후배들하고 같이 춤 연습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가 중3 때 예술 고등학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비보잉으로 한림예고에 지원했어요. 예고 진학 후에 거기서 더 재미를 붙여서, 조금 더 제대로 췄던 것 같아요.
융 : 그럼, 비보잉에서 힙합으로 전향을 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키 : 18살 때 무릎 수술을 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그 나이대가 비보이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10대부터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비보잉 세계에서는 조금 힘들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리고 그전에는 비보잉의 탑락(Toprock)이라는 요소만으로 춤추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제가 속해 있던 팀에서는 더 강력한 테크닉들을 원했고, 그 결이 되게 안 맞았어서 팀을 나오게 됐죠. 그후에 ‘내가 원하는 춤을 지금 가지고 있는 스타일로 출 수 있는 곳이 없나?’하고 찾아보다가 리듬 게이트(Rhythm Gate) 선생님이 비보이에서 힙합 댄서로 전향한 첫 번째 케이스였어서. 수업을 듣게 되고, 스타일을 아예 바꾸게 됐어요.
융 : 오, 그렇군요. 그 길을 걸어가 보신 분이 계셔서 좀 더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으셨을 것 같아요.
키 : 그렇죠.
융 : 힙합을 새롭게 배우시면서 평소 쓰던 기술보다 움직임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셨을 것 같은데요.
키 : 맞아요.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힙합은 자유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가 원하는 걸 그대로 표현해도 힙합이구나. 여기서는 제재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오히려 비보잉에서는 표현의 제약 같은 게 훨씬 많았거든요. 근데 힙합은 남들은 부담스러워할지 몰라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힙합이라고 다들 말해주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거기에 되게 매력을 느꼈죠. 원하는 걸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게 힙합의 절대적인 매력같아요.

융 : 그럼, 이 자유 안에서도 키린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힙합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키 : 저는 ’뮤지컬리티’라는 요소를 되게 중요하게 여겨요. 또, 힙합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원하는대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요소가 제일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융 : 그렇군요. 키린님의 무브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중에서도 이 뮤지컬리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따로 음악을 듣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키 : 일단,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먼저 듣고. 그다음에 그 음악에 어떤 소리들이 있는지 하나씩 파악해 나가면서 듣는 것 같아요. 사운드 하나하나를 몸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조금 더 직관적이고, 사람들한테 임팩트를 줄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게 저만의 팁.
융 : 공유 감사합니다(미소). 그럼, 들으면서 이미지를 그리기도 하실 것 같아요.
키 : 대부분 이미지를 그리면서 들어요. ‘이 소리는 뭔가 차 문이 닫힌 소리 같은데? 이 소리는 트라이앵글을 친 소리 같은데? 이 소리는 유리잔을 부딪친 소리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근데 물론 춤출 때만 그렇게 듣고. 평상시에 걸어 다닐 때는 저도 그냥 즐기면서 들어요(웃음).
융 : (미소). 이렇게 세심하게 듣고, 또 하나하나 그린 것들이 쌓여서 키린님의 무브에 담기는 것 같은데요. 따로 디깅은 어떻게 하는 편이신가요?
키 : 예전에는 정말 대회에 나오는 음악들. 춤을 추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음악들을 되게 많이 찾아서 들었는데. 최근에는 컴퓨터로 찍는 미디(MIDI) 음악의 영역이 넓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운드들을 계속 찾다 보니까 다양한 방면으로 디깅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스포티파이나 사운드 클라우드 혹은 밴드 캠프, 애플 뮤직, 유튜브 뮤직. 이렇게 여러 가지 쓰는데. 그 안에 ‘스테이션(Station)’이라는 기능이 있어요. 내가 듣고 있는 곡과 유사한 곡들을 나열해 주는 AI 시스템인데, 그걸로 대부분 찾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장르에 구애 없이 다 듣는 편이신가요?
키 : 네. 근데 최근에는 하이퍼 팝(Hyperpop) 혹은 플러그앤비(Pluggnb)처럼 힙합 음악에서 파생된 사운드들은 대부분 다 듣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외에 신선한 사운드들이 있으면 듣기도 하고.

융 : 그렇군요. 그럼, 춤을 출 때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키 : 음악과 나의 몸이 완전히 일치되는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그런 훈련들을 계속해서 그 순간들이 매 대회에서나 혹은 무대에서 계속 나오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서 그냥 ‘음악’과 ‘나’에 온전히 집중을 쏟아내야 되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키린님은 평상시에도 이 순간을 자주 느끼시나요?
키 : 네, 평소에도 자주 느껴요. 연습할 때도 그렇고. 혼자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사실, 음악도 흘려듣기보다는 최대한 집중하면서 그 바이브를 온전히 느끼려고 하고. 연습할 때는 불 꺼놓고, 스피커 앞에 가서 혼자 막 현대 미술 하는 것처럼 연습할 때도 있어요.
융 : 오, 정말요?
키 : 집중하는 순간들을 계속 트레이닝 해야 하다 보니까. 실제로 대회에서는 주변 신경 안 쓰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했을 때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연습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이신가요?
키 : 움직임 자체는 사실 비보잉에서 되게 많이 받아요. 제가 스탠딩에서 추는 춤들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댄서는 프랑스 비보이 맨노(Menno)인데. 제가 비보잉을 할 때도 그렇고, 힙합으로 넘어왔을 때도 그렇고. 되게 영감을 많이 받았던 비보이 중 한 명이고. 최근에는 리(Lee)라는 네덜란드 비보이 친구에게서도 많이 받고 있어요.
융 : 그렇군요. 맞아요, 키린님의 무브 특징 중 하나가 다채로운 플로우 흐름인만큼 비보잉 무브먼트가 강력한 퍼스널리티가 되는 것 같아요.
키 : 그렇죠. 제가 예전에 쓰던 테크닉들을 힙합에 가져와서 섞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게 저만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 그럼, 키린님이 보는 본인의 춤을 언어로 담아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키 : ‘용’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몸하고 꼬리가 배배 꼬이는 그런 유선적인 움직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레쿠쟈(Rayquaza)’라는 포켓몬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저도 모르게 많이 이미징(Imaging)을 하는 것 같아요.

융 : 오, 맞아요. 그런 움직임이 또 키린님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또, 평소 용 이모지도 되게 자주 쓰시더라고요.
키 : 맞아요. 엄청 좋아해요. 그게 레쿠쟈랑 거의 비슷한 색깔과 형상을 가지고 있어서.
융 : 그렇군요. 한마디로 보스 용.
키 : 그렇죠. 되게 멋있는 용. 검은색 용. 제 바탕 화면도 사실 (폰 화면을 보여주며) 레쿠쟈여서.
융 : 오, (감탄하며) 정말 멋있네요. 그럼, 이렇게 키린님만이 가진 움직임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 과정도 되게 궁금한데요.
키 : 저는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게이트 선생님이 없었으면 ‘힙합은 자유다‘라는 걸 못 느꼈을 거예요. 너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고. 그때 당시에 제가 어떻게 춤을 추던 “눈치 보지 말고 표현해라.“라는 걸 강하게 심어주셨었고, 남들은 (제가 추는 춤을) 힙합이 아니라고 할 때, 저한테 “그게 맞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춤을 추고 싶은, 그냥 순수 결정체였던, 자기 자신을 좀 더 표현해 보고 싶은 그런 한 사람한테 희망을 심어주셨어요.
또, 힙합을 처음 배우면 바운스나 아이솔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티칭을 그렇게 안 해 주셨거든요. 그것보다는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담아내는 법을 계속해서 알려주셨고. 그래서 그걸 보면서 ‘아, 이 소리는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구나. 이 소리에 굳이 내가 바운스를 하고 싶지 않으면 바운스를 안 해도 되고, 내가 느끼는 대로 가도 되는구나.‘라고 느꼈죠. 그렇게 계속 제가 하고 싶은 무브먼트 자체로 소리를 표현하다 보니까 저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융 : 베이직한 요소들에 중점을 둔 수업보다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먼저 배우셨군요.
키 : 네, 그래서 더 얽매이지 않게 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下
Never Stop
융 : 좋네요(미소). 그럼, 중1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움직임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춤의 어떤 면이 키린님을 계속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으신가요?
키 : 사실, 저는 도파민에 절여져 있는 사람이라(웃음). 제가 출 때도 그렇고, 남들의 춤을 볼 때도 그렇고. 정말 큰 무대에 서서 관객 함성을 듣는 게 계속해서 춤을 추는 이유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 한 장면 때문에 매일 연습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융 :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함성은 어떤 무대였을까요?
키 : 도파민이 최고치였을 때는 4월에 부산에서 열린 넥스트 지(NEXT-G). 제 스승님이 심사를 보셨고, 오천(5000)형이 DJ, 함께하고 있는 파트너 네마(Nema)도 있었는데. 근데 이제 게이트 쌤이 심사하시면서 그렇게 놀란 적이 많이 없으신데. 제가 추는 걸 보시고 반응이 오고, 오천 형은 DJ 하면서 소리 지르고 계시고. 네마는 제 뒤에서 보면서 막 앞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고. 저는 그렇게 제가 아끼는 사람들의 도파민을 한꺼번에 받은 적이 많이 없었거든요. 거의 ‘올해 도파민을 다 쓰지 않았나(웃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융 : 나의 움직임을 보여줬을 때 오는 사람들의 반응이 계속 춤을 추게 만들군요.
키 : 네, 일종의 마약같아요.
융 :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키 : 2018년도에 네마하고 <Fusion Concept>이라는 대회에 도전하게 됐는데. 그때 저희 둘이 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어요. “한국에도 이런 스타일이 있다. 이걸 한번 보여주러 가자.“하고, 상하이 예선에서 우승을 해서 한국 대표로 프랑스에 가게 됐죠.
근데 거기서 거의 힙합의 전체적인 씬을 이끌었던 레스 트윈스(Les Twins) 분들이 파이널 무대에서 저희의 춤을 보고 “한국에 이런 친구들이 있었냐, 너무 놀랐다. 한국 힙합 너무 신선하다. 계속 킵고잉(Keep going)해라.“라고 하시면서 먼저 악수를 해주셨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저희한테는 우상 같은 존재였어서. 그 순간을 못 잊고, 계속 도전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융 : 와, 진짜 너무 벅차셨을 것 같아요.
키 : 정말요. 제가 도전한 이유를 찾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네요. 그럼, 이런 키린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한데요.
키 : 있었죠. 슬럼프를 겪기 전에는 제 목표가 프랑스의 <Juste Debout>이라는 힙합 2대 2 배틀 우승이었어요. 그게 세계적으로 권위가 가장 높은 스탠딩 댄스 배틀이기도 해서 네마랑 저랑 항상 기회를 노리고, 준비했었거든요. 그러다가 2019년 말쯤에 “우리 이제 완성됐다. 우승하러 가자.“하고 티켓을 딱 예약하려 하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대회 자체가 근 한 2년 전까지 아예 사라졌었어요.
근데 제가 목표를 대회에만 두고, 춤을 췄었는데 대회가 사라져 버리니까. 춤을 추는 이유가 없어졌다고 해야 되나? 약간 길을 잃은 느낌? 그래서 2019년 말에 슬럼프에 심하게 빠지게 되고. ‘춤을 왜 추는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었죠. 원래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피시방에서 하루 15시간씩 밥 먹고, 자고, 알바하러 갔다가. 다시 밥 먹고, 자고, 알바하러 가고. 이 생활을 한 세 달 정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융 : 이 대회만 바라봤는데 없어진 거니까. 많이 허무하셨을 것 같네요.
키 : 네, ‘이제 그럼 나는 뭘 위해 춰야 되지?‘ 그러면서 아주 심하게 빠졌었죠.
융 :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다시 회복하셨나요?
키 : 일단, PC방에서 볶음밥과 라면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까 살이 거의 30kg가량 쪘어요. 거울을 봤는데 진짜 거의 비버마냥 쪄버려서. 또, 코로나가 터져 있는 순간에도 스승님은 매일같이 연습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죠. ‘뭐지?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 이러면서 연습을 다시 나갔죠. 그리고 ‘내가 도전하려고 했던 무대들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면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세 달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 이후로는 따로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았나요?
키 : 또, 있었어요. 제가 춤으로 성과를 크게 이루지 못하다 보니까 전역한 후에 아버지가 “사업을 물려받지 않을래?”라고 제안하셨어요. 그리고 뭔가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나이에 제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비보이에서 힙합으로 빠르게 넘어갔던 것처럼 ‘춤이 아닌 다른 걸 한번 해봐야 하나?, 변화에 무서워하면 안 된다는데, 지금 해봐야 할까?’하고 생각했죠. 그런 찰나에 오천이 형한테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안 된다. 넌 이미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너는 조금 더 여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저한테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어요. 그때 형이 중국으로 심사랑 워크숍으로 투어를 도셨었는데, 가는 곳마다 저를 배틀 게스트로 다 넣어주셔가지고. 행사 4개를 한 번에 같이 하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죠. “여기서 경험을 더 해봐라.”하시면서.
융 : 와, 너무 감사하네요.
키 : 진짜... 게이트 쌤과 오천 형이 저의 영원한 멘토가 되지 않을까. 아무리 스승과 제자, 아무리 친한 형과 동생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남인데. 이 어려운 구간들을 버텨낼 수 있게 계속해서 돌봐주고, 좋은 말씀 해 주셨던 게 너무 감사하죠.
융 :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그 시기를 지나보낼 수 있으셨군요.
키 : 그렇죠. 물론, 친구들도 정말 한몫했죠. 같이 으쌰으쌰하지 않았으면 저도 진짜...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좋은 친구들을 옆에 둬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이런 상황적인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하시고, 활동하시며 댄서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계신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키린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키 :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한테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꾸준하게 일하면서 저희 다섯 식구를 보필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고. 그러면서 ‘저렇게 하면 뭐라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조금 더 제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성과를 이룬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은데요. 맞아요, 환경 자체가 주는 힘이 엄청 큰 것 같은데요(미소). 그럼, ‘KIRIN‘이라는 댄서 혹은 ’박세찬‘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키 : 일단 사람으로서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요리를 해보고 싶어요. 우주 식량 납품을 해보고 싶은데. 요즘은 우주인들에게 좀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우주 식량이 나오거든요. 저는 사실 지금도 경쟁을 너무 좋아하는데, 아마 요리를 하게 되면 또 그들만의 경쟁 시스템에 들어가는 거니까. 너무 기대되기도 하고. 저는 요리하는 사람들이 되게 섹시하다고 느껴가지고.
융 : 오, 그렇죠. 나중에 <흑백요리사>에서 뵙게 될 수도 있겠네요.
키 : (웃음)
융 : 지금도 요리를 즐겨하시나요?
키 : 네, 지금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되게 즐겨요. 시간 나면 거의 해 먹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융 : 좋네요(미소). 댄서로서의 목표도 있으신가요?
키 : 예전에는 그냥 실존하는 대회의 ‘우승‘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는 게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가장 메리트있는 경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R&B를 되게 좋아하는데, 이 장르에 빠지게 만든 사람이 Summer Walker라는 미국 R&B 가수거든요. 저한테 음악을 듣고, 울게 만들어준 첫 번째 가수라. 이 아티스트와 작업해 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융 : 오, 너무 좋네요. 기대하겠습니다(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키 :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눈치 보면 나올 것도 안 나와서. 춤을 추는 순간에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표현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음악과 함께 자신만의 리듬을 그려온 KIRIN. 자유와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며, 그 모든 순간을 춤으로 증명해왔다. 무대 위의 긴장감을 사랑하고, 음악과 사람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춤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도 많은 이의 영감이 될 것이다. 오늘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을 그의 여정에 따뜻한 응원이 닿길, 그리고 그 춤이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키린
차가운 얼음처럼 단단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을 가진 댄서 KIRIN. 자유와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움직임을 새롭게 정의하며 짙은 울림과 새로운 영감을 전하고 있다. 강인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그의 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만나 보자.
인터뷰 上
Born to Be KIRIN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키 : 안녕하세요, 프리스타일 힙합을 하고 있는 키린이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키 : 간간이 해외도 다니고, 배틀도 하고. 수업도 하면서 포켓몬 카드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융 : 좋네요(미소). 이 ‘KIRIN’이라는 댄서 네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키 : 원래는 쓰던 닉네임이 따로 있었어요. ‘Future Styler’라고. 근데 그 이름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었거든요. 네마(NEMA)라는 친구와 만들 그룹 이름을 제 인스타 닉네임으로 먼저 바꿔놓고, 프랑스의 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저한테 이름을 물어보지 않고, 거기서 전광판에 인스타 닉네임하고 사진을 그냥 띄워버린 거예요. 그래서 제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한테도 그 이름으로 인식이 된거죠.
그러고 군대를 가기 전에 이미지 변화를 줄 겸 다른 이름을 생각하다가. 제가 플레이스테이션(Play Station)에 ‘몬스터 헌터(Monster Hunter)’라는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당시에 최종 보스 몬스터가 키린이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가장 강력하고, 센 존재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정하게 됐죠.
융 : 보스 몬스터의 외형도 센 이미지인가요?
키 : 키린의 외형은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요. 일본에서 내려져 오는 영물, 약간 상상의 동물 느낌인데. 동물 말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융 : 오, 멋지네요. 이 댄서 네임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키 : 훨씬 마음에 들어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는 것도 닉네임 덕분인 것 같아서.
융 : 좋네요(미소). 춤은 어떤 경로로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키 :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비보잉(B-Boying) 동아리가 있었는데. 거기 들어가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선후배들하고 같이 춤 연습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가 중3 때 예술 고등학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비보잉으로 한림예고에 지원했어요. 예고 진학 후에 거기서 더 재미를 붙여서, 조금 더 제대로 췄던 것 같아요.
융 : 그럼, 비보잉에서 힙합으로 전향을 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키 : 18살 때 무릎 수술을 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그 나이대가 비보이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10대부터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비보잉 세계에서는 조금 힘들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리고 그전에는 비보잉의 탑락(Toprock)이라는 요소만으로 춤추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제가 속해 있던 팀에서는 더 강력한 테크닉들을 원했고, 그 결이 되게 안 맞았어서 팀을 나오게 됐죠. 그후에 ‘내가 원하는 춤을 지금 가지고 있는 스타일로 출 수 있는 곳이 없나?’하고 찾아보다가 리듬 게이트(Rhythm Gate) 선생님이 비보이에서 힙합 댄서로 전향한 첫 번째 케이스였어서. 수업을 듣게 되고, 스타일을 아예 바꾸게 됐어요.
융 : 오, 그렇군요. 그 길을 걸어가 보신 분이 계셔서 좀 더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으셨을 것 같아요.
키 : 그렇죠.
융 : 힙합을 새롭게 배우시면서 평소 쓰던 기술보다 움직임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셨을 것 같은데요.
키 : 맞아요.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힙합은 자유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가 원하는 걸 그대로 표현해도 힙합이구나. 여기서는 제재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오히려 비보잉에서는 표현의 제약 같은 게 훨씬 많았거든요. 근데 힙합은 남들은 부담스러워할지 몰라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힙합이라고 다들 말해주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거기에 되게 매력을 느꼈죠. 원하는 걸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게 힙합의 절대적인 매력같아요.
융 : 그럼, 이 자유 안에서도 키린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힙합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키 : 저는 ’뮤지컬리티’라는 요소를 되게 중요하게 여겨요. 또, 힙합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원하는대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요소가 제일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융 : 그렇군요. 키린님의 무브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 중에서도 이 뮤지컬리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따로 음악을 듣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키 : 일단,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먼저 듣고. 그다음에 그 음악에 어떤 소리들이 있는지 하나씩 파악해 나가면서 듣는 것 같아요. 사운드 하나하나를 몸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조금 더 직관적이고, 사람들한테 임팩트를 줄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게 저만의 팁.
융 : 공유 감사합니다(미소). 그럼, 들으면서 이미지를 그리기도 하실 것 같아요.
키 : 대부분 이미지를 그리면서 들어요. ‘이 소리는 뭔가 차 문이 닫힌 소리 같은데? 이 소리는 트라이앵글을 친 소리 같은데? 이 소리는 유리잔을 부딪친 소리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근데 물론 춤출 때만 그렇게 듣고. 평상시에 걸어 다닐 때는 저도 그냥 즐기면서 들어요(웃음).
융 : (미소). 이렇게 세심하게 듣고, 또 하나하나 그린 것들이 쌓여서 키린님의 무브에 담기는 것 같은데요. 따로 디깅은 어떻게 하는 편이신가요?
키 : 예전에는 정말 대회에 나오는 음악들. 춤을 추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음악들을 되게 많이 찾아서 들었는데. 최근에는 컴퓨터로 찍는 미디(MIDI) 음악의 영역이 넓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운드들을 계속 찾다 보니까 다양한 방면으로 디깅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스포티파이나 사운드 클라우드 혹은 밴드 캠프, 애플 뮤직, 유튜브 뮤직. 이렇게 여러 가지 쓰는데. 그 안에 ‘스테이션(Station)’이라는 기능이 있어요. 내가 듣고 있는 곡과 유사한 곡들을 나열해 주는 AI 시스템인데, 그걸로 대부분 찾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따로 장르에 구애 없이 다 듣는 편이신가요?
키 : 네. 근데 최근에는 하이퍼 팝(Hyperpop) 혹은 플러그앤비(Pluggnb)처럼 힙합 음악에서 파생된 사운드들은 대부분 다 듣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외에 신선한 사운드들이 있으면 듣기도 하고.
융 : 그렇군요. 그럼, 춤을 출 때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키 : 음악과 나의 몸이 완전히 일치되는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그런 훈련들을 계속해서 그 순간들이 매 대회에서나 혹은 무대에서 계속 나오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서 그냥 ‘음악’과 ‘나’에 온전히 집중을 쏟아내야 되는 것 같아요.
융 : 그럼, 키린님은 평상시에도 이 순간을 자주 느끼시나요?
키 : 네, 평소에도 자주 느껴요. 연습할 때도 그렇고. 혼자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사실, 음악도 흘려듣기보다는 최대한 집중하면서 그 바이브를 온전히 느끼려고 하고. 연습할 때는 불 꺼놓고, 스피커 앞에 가서 혼자 막 현대 미술 하는 것처럼 연습할 때도 있어요.
융 : 오, 정말요?
키 : 집중하는 순간들을 계속 트레이닝 해야 하다 보니까. 실제로 대회에서는 주변 신경 안 쓰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했을 때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연습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 편이신가요?
키 : 움직임 자체는 사실 비보잉에서 되게 많이 받아요. 제가 스탠딩에서 추는 춤들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댄서는 프랑스 비보이 맨노(Menno)인데. 제가 비보잉을 할 때도 그렇고, 힙합으로 넘어왔을 때도 그렇고. 되게 영감을 많이 받았던 비보이 중 한 명이고. 최근에는 리(Lee)라는 네덜란드 비보이 친구에게서도 많이 받고 있어요.
융 : 그렇군요. 맞아요, 키린님의 무브 특징 중 하나가 다채로운 플로우 흐름인만큼 비보잉 무브먼트가 강력한 퍼스널리티가 되는 것 같아요.
키 : 그렇죠. 제가 예전에 쓰던 테크닉들을 힙합에 가져와서 섞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게 저만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융 : 좋네요. 그럼, 키린님이 보는 본인의 춤을 언어로 담아본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키 : ‘용’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몸하고 꼬리가 배배 꼬이는 그런 유선적인 움직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레쿠쟈(Rayquaza)’라는 포켓몬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저도 모르게 많이 이미징(Imaging)을 하는 것 같아요.
융 : 오, 맞아요. 그런 움직임이 또 키린님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또, 평소 용 이모지도 되게 자주 쓰시더라고요.
키 : 맞아요. 엄청 좋아해요. 그게 레쿠쟈랑 거의 비슷한 색깔과 형상을 가지고 있어서.
융 : 그렇군요. 한마디로 보스 용.
키 : 그렇죠. 되게 멋있는 용. 검은색 용. 제 바탕 화면도 사실 (폰 화면을 보여주며) 레쿠쟈여서.
융 : 오, (감탄하며) 정말 멋있네요. 그럼, 이렇게 키린님만이 가진 움직임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 과정도 되게 궁금한데요.
키 : 저는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게이트 선생님이 없었으면 ‘힙합은 자유다‘라는 걸 못 느꼈을 거예요. 너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고. 그때 당시에 제가 어떻게 춤을 추던 “눈치 보지 말고 표현해라.“라는 걸 강하게 심어주셨었고, 남들은 (제가 추는 춤을) 힙합이 아니라고 할 때, 저한테 “그게 맞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춤을 추고 싶은, 그냥 순수 결정체였던, 자기 자신을 좀 더 표현해 보고 싶은 그런 한 사람한테 희망을 심어주셨어요.
또, 힙합을 처음 배우면 바운스나 아이솔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티칭을 그렇게 안 해 주셨거든요. 그것보다는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담아내는 법을 계속해서 알려주셨고. 그래서 그걸 보면서 ‘아, 이 소리는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구나. 이 소리에 굳이 내가 바운스를 하고 싶지 않으면 바운스를 안 해도 되고, 내가 느끼는 대로 가도 되는구나.‘라고 느꼈죠. 그렇게 계속 제가 하고 싶은 무브먼트 자체로 소리를 표현하다 보니까 저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융 : 베이직한 요소들에 중점을 둔 수업보다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을 먼저 배우셨군요.
키 : 네, 그래서 더 얽매이지 않게 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下
Never Stop
융 : 좋네요(미소). 그럼, 중1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움직임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춤의 어떤 면이 키린님을 계속 댄서로 살게 하는 것 같으신가요?
키 : 사실, 저는 도파민에 절여져 있는 사람이라(웃음). 제가 출 때도 그렇고, 남들의 춤을 볼 때도 그렇고. 정말 큰 무대에 서서 관객 함성을 듣는 게 계속해서 춤을 추는 이유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 한 장면 때문에 매일 연습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융 :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함성은 어떤 무대였을까요?
키 : 도파민이 최고치였을 때는 4월에 부산에서 열린 넥스트 지(NEXT-G). 제 스승님이 심사를 보셨고, 오천(5000)형이 DJ, 함께하고 있는 파트너 네마(Nema)도 있었는데. 근데 이제 게이트 쌤이 심사하시면서 그렇게 놀란 적이 많이 없으신데. 제가 추는 걸 보시고 반응이 오고, 오천 형은 DJ 하면서 소리 지르고 계시고. 네마는 제 뒤에서 보면서 막 앞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고. 저는 그렇게 제가 아끼는 사람들의 도파민을 한꺼번에 받은 적이 많이 없었거든요. 거의 ‘올해 도파민을 다 쓰지 않았나(웃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융 : 나의 움직임을 보여줬을 때 오는 사람들의 반응이 계속 춤을 추게 만들군요.
키 : 네, 일종의 마약같아요.
융 :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키 : 2018년도에 네마하고 <Fusion Concept>이라는 대회에 도전하게 됐는데. 그때 저희 둘이 되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어요. “한국에도 이런 스타일이 있다. 이걸 한번 보여주러 가자.“하고, 상하이 예선에서 우승을 해서 한국 대표로 프랑스에 가게 됐죠.
근데 거기서 거의 힙합의 전체적인 씬을 이끌었던 레스 트윈스(Les Twins) 분들이 파이널 무대에서 저희의 춤을 보고 “한국에 이런 친구들이 있었냐, 너무 놀랐다. 한국 힙합 너무 신선하다. 계속 킵고잉(Keep going)해라.“라고 하시면서 먼저 악수를 해주셨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저희한테는 우상 같은 존재였어서. 그 순간을 못 잊고, 계속 도전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융 : 와, 진짜 너무 벅차셨을 것 같아요.
키 : 정말요. 제가 도전한 이유를 찾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네요. 그럼, 이런 키린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한데요.
키 : 있었죠. 슬럼프를 겪기 전에는 제 목표가 프랑스의 <Juste Debout>이라는 힙합 2대 2 배틀 우승이었어요. 그게 세계적으로 권위가 가장 높은 스탠딩 댄스 배틀이기도 해서 네마랑 저랑 항상 기회를 노리고, 준비했었거든요. 그러다가 2019년 말쯤에 “우리 이제 완성됐다. 우승하러 가자.“하고 티켓을 딱 예약하려 하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대회 자체가 근 한 2년 전까지 아예 사라졌었어요.
근데 제가 목표를 대회에만 두고, 춤을 췄었는데 대회가 사라져 버리니까. 춤을 추는 이유가 없어졌다고 해야 되나? 약간 길을 잃은 느낌? 그래서 2019년 말에 슬럼프에 심하게 빠지게 되고. ‘춤을 왜 추는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었죠. 원래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피시방에서 하루 15시간씩 밥 먹고, 자고, 알바하러 갔다가. 다시 밥 먹고, 자고, 알바하러 가고. 이 생활을 한 세 달 정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융 : 이 대회만 바라봤는데 없어진 거니까. 많이 허무하셨을 것 같네요.
키 : 네, ‘이제 그럼 나는 뭘 위해 춰야 되지?‘ 그러면서 아주 심하게 빠졌었죠.
융 :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다시 회복하셨나요?
키 : 일단, PC방에서 볶음밥과 라면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까 살이 거의 30kg가량 쪘어요. 거울을 봤는데 진짜 거의 비버마냥 쪄버려서. 또, 코로나가 터져 있는 순간에도 스승님은 매일같이 연습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죠. ‘뭐지?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 이러면서 연습을 다시 나갔죠. 그리고 ‘내가 도전하려고 했던 무대들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면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세 달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 이후로는 따로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았나요?
키 : 또, 있었어요. 제가 춤으로 성과를 크게 이루지 못하다 보니까 전역한 후에 아버지가 “사업을 물려받지 않을래?”라고 제안하셨어요. 그리고 뭔가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나이에 제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비보이에서 힙합으로 빠르게 넘어갔던 것처럼 ‘춤이 아닌 다른 걸 한번 해봐야 하나?, 변화에 무서워하면 안 된다는데, 지금 해봐야 할까?’하고 생각했죠. 그런 찰나에 오천이 형한테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안 된다. 넌 이미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너는 조금 더 여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저한테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어요. 그때 형이 중국으로 심사랑 워크숍으로 투어를 도셨었는데, 가는 곳마다 저를 배틀 게스트로 다 넣어주셔가지고. 행사 4개를 한 번에 같이 하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죠. “여기서 경험을 더 해봐라.”하시면서.
융 : 와, 너무 감사하네요.
키 : 진짜... 게이트 쌤과 오천 형이 저의 영원한 멘토가 되지 않을까. 아무리 스승과 제자, 아무리 친한 형과 동생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남인데. 이 어려운 구간들을 버텨낼 수 있게 계속해서 돌봐주고, 좋은 말씀 해 주셨던 게 너무 감사하죠.
융 :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그 시기를 지나보낼 수 있으셨군요.
키 : 그렇죠. 물론, 친구들도 정말 한몫했죠. 같이 으쌰으쌰하지 않았으면 저도 진짜...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좋은 친구들을 옆에 둬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이런 상황적인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하시고, 활동하시며 댄서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계신데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키린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키 :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한테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꾸준하게 일하면서 저희 다섯 식구를 보필하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고. 그러면서 ‘저렇게 하면 뭐라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조금 더 제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성과를 이룬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은데요. 맞아요, 환경 자체가 주는 힘이 엄청 큰 것 같은데요(미소). 그럼, ‘KIRIN‘이라는 댄서 혹은 ’박세찬‘이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키 : 일단 사람으로서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요리를 해보고 싶어요. 우주 식량 납품을 해보고 싶은데. 요즘은 우주인들에게 좀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우주 식량이 나오거든요. 저는 사실 지금도 경쟁을 너무 좋아하는데, 아마 요리를 하게 되면 또 그들만의 경쟁 시스템에 들어가는 거니까. 너무 기대되기도 하고. 저는 요리하는 사람들이 되게 섹시하다고 느껴가지고.
융 : 오, 그렇죠. 나중에 <흑백요리사>에서 뵙게 될 수도 있겠네요.
키 : (웃음)
융 : 지금도 요리를 즐겨하시나요?
키 : 네, 지금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되게 즐겨요. 시간 나면 거의 해 먹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융 : 좋네요(미소). 댄서로서의 목표도 있으신가요?
키 : 예전에는 그냥 실존하는 대회의 ‘우승‘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는 게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가장 메리트있는 경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R&B를 되게 좋아하는데, 이 장르에 빠지게 만든 사람이 Summer Walker라는 미국 R&B 가수거든요. 저한테 음악을 듣고, 울게 만들어준 첫 번째 가수라. 이 아티스트와 작업해 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융 : 오, 너무 좋네요. 기대하겠습니다(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키 :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눈치 보면 나올 것도 안 나와서. 춤을 추는 순간에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표현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음악과 함께 자신만의 리듬을 그려온 KIRIN. 자유와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며, 그 모든 순간을 춤으로 증명해왔다. 무대 위의 긴장감을 사랑하고, 음악과 사람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춤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도 많은 이의 영감이 될 것이다. 오늘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을 그의 여정에 따뜻한 응원이 닿길, 그리고 그 춤이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