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스텝 속에 뜨거운 에너지를 담아내는 댄서 ADI. 음악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솔직한 움직임을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쾌함과 진심이 공존하는 그의 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자.
인터뷰 上
Call Me ADI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 : 안녕하세요, 저는 댄서 아디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이 ‘ADI’이라는 댄서 네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아 : ‘아디다스(adidas)’에서 온 이름인데. 어렸을 때 다니던 학원 옆에 어학원이 있었거든요. 거기 원어민 선생님이랑 자주 인사했었는데, 제가 아디다스의 저지를 자주 입고 다니니까. 그분이 “I will call you ADI.”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이름이 딱 꽂혀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융 : 오,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아 : 요즘은 팀 활동을 하면서 콘텐츠도 찍고, 배틀도 나가고. 수업도 하고. 그렇게 춤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융 : 춤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네요(미소). 그렇다면 춤은 어떤 경로로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 : 저는 고등학교 2학년 2월부터 시작했는데. 단순하게 공부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딱 수학여행에서 애들이랑 진짜 열정적으로 무대를 준비했던 게 크게 남아서. 그 이후로 학원을 1~2년 정도 다니면서 힙합도 배우고, 팝핀도 배우면서 시작했죠. 학원을 나와서는 크럼프 같이 다른 장르들도 계속 배웠던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 과정에서 ‘라이트핏’이라는 스타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 : 처음 접한 건 2016 WDC에서 였는데. 딱 그 발과 스텝을 사용하는 요소들을 보면서 ‘오, 이게 라이트핏인가?’ 생각만 하고, 지나갔었거든요. 근데 연습실에서 팀원이 한 영상을 보라고 해서 딱 봤는데 흑인 댄서들이 정말 즐기면서 라이트핏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진짜 아직도 안 잊혀져요.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움직임이었어서. 그냥 ‘아, 이걸 해야겠다.’라는 생각? 이게 2000년대 초반에 뉴욕에서 시작된 스타일이라, 2019년에 바로 라이트핏을 함께 꿈꾸던 친구들과 뉴욕으로 배우러 갔죠.
[출처] christophermaag
융 : 와, 바로. 대단하시네요. 그럼, 다녀오셔서 더 이 움직임에 대한 방향이 확고해지셨을 것 같아요.
아 : 그렇죠. 그런데 그때 딱 코로나가 터져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에메트 사운드(EMET SOUND)’라는 팀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그러면 이 팀 안에서 라이트핏을 잘 녹여서 담아봐야겠다.’ 하고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아디님이 생각하시는 라이트핏만의 매력과 따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 : 제일 큰 건 다 같이 화합하고, 공유하는 바이브를 만들 수 있는 것. 무브 중에 ‘Lock in’이라는 동작이 있는데, 그게 마무리를 장식해 주는 느낌이어서. 그런 특징적인 움직임을 같이 하면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무대나 배틀, 콘텐츠를 통해서도 ‘아, 같이 춤추고 싶다.’ 이런 느낌과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죠.
또, 요소는 라이트핏에서는 ‘펑키(funky)하다.’라는 말을 ‘스펭키(spanky)하다.’ 라고 표현하는데. 다른 움직임보다 n박자 안에서 자신의 스펭키함을 맛있게 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융 : 유니크한 표현이네요. 라이트핏이 가벼운 무브를 강조하지만, 빠르고 다채로운 컨트롤을 위해선 더더욱 강한 근력과 타이밍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따로 트레이닝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아 : 처음에는 저도 그런 힘이 들어가는 부위의 차이나 컨트롤적인 부분의 다름을 많이 느꼈었는데. ‘크로스핏(Crossfit)’이라는 운동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점차 줄여갔던 것 같아요. 움직임에 도움도 많이 되고.
융 : 그럼, 힙합이나 팝핀같은 타 장르를 이어갔을 때와 비교해서 느꼈던 차이도 있을까요?
아 : 뭔가... 스트릿 댄서들에게 비주류인 느낌? 힙합이긴 하지만 힙합 프리스타일이랑은 다르게 느껴지는.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스타일이라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니까.
초반에는 라이트핏에서 쓰이는 동작들을 다른 표현 (‘냥냥 펀치’)을 붙여서 티칭을 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좀 정확하게 전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트핏이 점점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게 되면서 이런 일은 좀 없어진 것 같아요. (라이트핏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보니까.

융 : 맞아요. 그만큼 국내 배틀장에서나 콘텐츠를 통해서도 라이트핏의 움직임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는데요. 뉴욕과는 다른 한국 Litefeet씬 만의 정서나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 : 뉴욕은 이미 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의 놀이. 플레이(Play)로 받아들여지거든요. ‘내가 이렇게 동작을 하면 이렇게 반응하고, 이렇게 움직이겠지?’처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무브가 되었는데. 한국은 아직 자신의 춤을 풍성하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로 느껴지는 게 커서. 그게 좀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근데 저희는 당연히 그 문화를 배워온 거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만의 바이브가 생기지 않을까(미소).
융 : 기대가 되네요(미소). 그렇다면 온전히 춤, 움직임을 이어가실 때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아 : 음악과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걸 온전히 느끼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쾌함, 아니면 완전히 도프(dope : 멋진)한, 슬픔, 행복함 등의 감정들을 투명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인터뷰 下
Becoming Myself
융 : ‘ADI’님 하면 딱 떠오르는 키워드가 ‘캐릭터’, ‘개성’인 만큼 어떻게 자신만의 색을 찾으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아 : 저도 춤을 춰오면서 ‘어떻게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었는데. 당시에 호진(Hozin) 형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질문하고, 얘기도 들으면서 찾아갔던 것 같아요.
‘아, 이게 내 모습이구나. 내가 하고 싶은 움직임이구나.‘하면서. 결국은 진짜 자신을 먼저 잘 아는 게 필요해요. 본 모습을 깨닫는 게 중요하고. 나는 이런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과 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까.
융 :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요?
아 : 그렇죠. 근데 맞지 않는 옷도 계속 입어봐야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도 아는 거니까.
융 : 그럼,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되는 걸까요?
아 : 근데 그 옷이 맞게끔 최대한 움직임을 더해보거나, 체형과 다르게 큰 옷을 좋아하면 거기다 액세서리를 더해보거나. 이런 시도들은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좀 나와의 대화를 많이 해보면 어떨까. 본인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게 필요한지. 저는 코로나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서. 그때 생각을 많이 정리했었던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이신가요?
아 : 아무래도 댄서 동료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얻는 것 같고. 뮤직비디오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도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아디님도 팀 활동이나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계시잖아요. 그 안에는 주로 어떤 부분을 집중해서 담고자 하시나요?
아 : 유쾌한 감정과 에너지를 녹여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팀으로서 하는 활동은 좀 메뉴얼화되어 있다 보니까 지금은 일적으로 다가오는 게 큰 느낌? 영상의 퀄리티는 좋은데, 즐기지 못하는 게 영상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서.
요즘 그런 부분이 고민이 되는 것 같고. 연구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냥 되게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콘텐츠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네요(미소). 그렇다면 'EMET SOUND'라는 팀이나 'ADI'라는 활동명으로 정의되지 않는 ‘윤영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 :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후) 뭔가 간단히 표현하면 초딩. 약간...삼춘기? 유치뽕짝. 이런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융 : 오, 그래서 더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고, 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아 : 그렇죠. 근데 또 이게 안좋게 작용할 수도 있는 거니까. 평소에는 이런 면을 꺼두고 사는 것 같아요. 나이도 있다 보니까.
융 : 그렇군요.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아 : 저희 가족은 연말에 매번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를 갖거든요. 그때 사촌 동생이 저한테 배틀을 신청해서 같이 진짜 즐기면서 췄던 기억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도 진짜 좋아해 주시고. ‘아, 이게 행복이구나.‘ 느꼈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춤으로 하나가 되는 걸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융 : 너무 좋네요(미소). 이런 아디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아 : 제가 생각하기에 슬럼프는 자기가 만든 가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멈추지만 않으면 나아가고 있는 건데. 자꾸 남과 비교하니까 자신의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내가 나를 믿어주고. 슬럼프보다는 스스로 ‘정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성과가 좋지 않으면 ‘뭐, 안되는 시기인가 보다.’하고, 하던 거 계속 하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이겠지.’하면서.

융 :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본인만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 : 가족.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이들에게 힘을 얻기도 하고, 이들이 정말 힘들 때 힘이 될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융 : 댄서 ‘ADI‘ 혹은 ‘윤영우‘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 : 저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이 존재가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의미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나중에 저의 아들이나 딸이 “저희 아빠는 춤추는 사람이에요.”가 아니라 “저희 아빠 ’ADI‘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댄서가 되고 싶어요.
융 : 오, 너무 멋지네요(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아 : 경쟁이나 시기, 질투보다 자신의 춤, 다른 이의 춤을 사랑으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게 두지 마세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면서 계속 달려가셨으면 좋겠습니다(미소).

자신과 깊이 대화하며, 무대 위에서 가장 투명한 에너지를 쌓아온 ADI.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춤으로 기록해왔다. 함께 나누는 에너지와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멈추지 않는 진심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이 된다.
오늘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나아가고 있을 그의 걸음에 따뜻한 응원이 닿길, 그의 춤이 앞으로도 누군가의 하루에 새로운 영감과 유쾌한 에너지로 스며들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아디
가벼운 스텝 속에 뜨거운 에너지를 담아내는 댄서 ADI. 음악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솔직한 움직임을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쾌함과 진심이 공존하는 그의 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자.
인터뷰 上
Call Me ADI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 : 안녕하세요, 저는 댄서 아디라고 합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이 ‘ADI’이라는 댄서 네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아 : ‘아디다스(adidas)’에서 온 이름인데. 어렸을 때 다니던 학원 옆에 어학원이 있었거든요. 거기 원어민 선생님이랑 자주 인사했었는데, 제가 아디다스의 저지를 자주 입고 다니니까. 그분이 “I will call you ADI.”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이름이 딱 꽂혀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융 : 오,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아 : 요즘은 팀 활동을 하면서 콘텐츠도 찍고, 배틀도 나가고. 수업도 하고. 그렇게 춤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융 : 춤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네요(미소). 그렇다면 춤은 어떤 경로로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 : 저는 고등학교 2학년 2월부터 시작했는데. 단순하게 공부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딱 수학여행에서 애들이랑 진짜 열정적으로 무대를 준비했던 게 크게 남아서. 그 이후로 학원을 1~2년 정도 다니면서 힙합도 배우고, 팝핀도 배우면서 시작했죠. 학원을 나와서는 크럼프 같이 다른 장르들도 계속 배웠던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 과정에서 ‘라이트핏’이라는 스타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 : 처음 접한 건 2016 WDC에서 였는데. 딱 그 발과 스텝을 사용하는 요소들을 보면서 ‘오, 이게 라이트핏인가?’ 생각만 하고, 지나갔었거든요. 근데 연습실에서 팀원이 한 영상을 보라고 해서 딱 봤는데 흑인 댄서들이 정말 즐기면서 라이트핏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진짜 아직도 안 잊혀져요. 제가 너무 하고 싶은 움직임이었어서. 그냥 ‘아, 이걸 해야겠다.’라는 생각? 이게 2000년대 초반에 뉴욕에서 시작된 스타일이라, 2019년에 바로 라이트핏을 함께 꿈꾸던 친구들과 뉴욕으로 배우러 갔죠.
[출처] christophermaag
아 : 그렇죠. 그런데 그때 딱 코로나가 터져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에메트 사운드(EMET SOUND)’라는 팀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그러면 이 팀 안에서 라이트핏을 잘 녹여서 담아봐야겠다.’ 하고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아디님이 생각하시는 라이트핏만의 매력과 따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 : 제일 큰 건 다 같이 화합하고, 공유하는 바이브를 만들 수 있는 것. 무브 중에 ‘Lock in’이라는 동작이 있는데, 그게 마무리를 장식해 주는 느낌이어서. 그런 특징적인 움직임을 같이 하면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무대나 배틀, 콘텐츠를 통해서도 ‘아, 같이 춤추고 싶다.’ 이런 느낌과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죠.
또, 요소는 라이트핏에서는 ‘펑키(funky)하다.’라는 말을 ‘스펭키(spanky)하다.’ 라고 표현하는데. 다른 움직임보다 n박자 안에서 자신의 스펭키함을 맛있게 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융 : 유니크한 표현이네요. 라이트핏이 가벼운 무브를 강조하지만, 빠르고 다채로운 컨트롤을 위해선 더더욱 강한 근력과 타이밍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따로 트레이닝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아 : 처음에는 저도 그런 힘이 들어가는 부위의 차이나 컨트롤적인 부분의 다름을 많이 느꼈었는데. ‘크로스핏(Crossfit)’이라는 운동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점차 줄여갔던 것 같아요. 움직임에 도움도 많이 되고.
융 : 그럼, 힙합이나 팝핀같은 타 장르를 이어갔을 때와 비교해서 느꼈던 차이도 있을까요?
아 : 뭔가... 스트릿 댄서들에게 비주류인 느낌? 힙합이긴 하지만 힙합 프리스타일이랑은 다르게 느껴지는.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스타일이라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니까.
초반에는 라이트핏에서 쓰이는 동작들을 다른 표현 (‘냥냥 펀치’)을 붙여서 티칭을 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좀 정확하게 전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트핏이 점점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게 되면서 이런 일은 좀 없어진 것 같아요. (라이트핏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보니까.
융 : 맞아요. 그만큼 국내 배틀장에서나 콘텐츠를 통해서도 라이트핏의 움직임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는데요. 뉴욕과는 다른 한국 Litefeet씬 만의 정서나 특징은 무엇일까요?
아 : 뉴욕은 이미 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의 놀이. 플레이(Play)로 받아들여지거든요. ‘내가 이렇게 동작을 하면 이렇게 반응하고, 이렇게 움직이겠지?’처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무브가 되었는데. 한국은 아직 자신의 춤을 풍성하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로 느껴지는 게 커서. 그게 좀 큰 차이인 것 같아요. 근데 저희는 당연히 그 문화를 배워온 거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만의 바이브가 생기지 않을까(미소).
융 : 기대가 되네요(미소). 그렇다면 온전히 춤, 움직임을 이어가실 때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아 : 음악과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걸 온전히 느끼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쾌함, 아니면 완전히 도프(dope : 멋진)한, 슬픔, 행복함 등의 감정들을 투명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인터뷰 下
Becoming Myself
융 : ‘ADI’님 하면 딱 떠오르는 키워드가 ‘캐릭터’, ‘개성’인 만큼 어떻게 자신만의 색을 찾으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아 : 저도 춤을 춰오면서 ‘어떻게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었는데. 당시에 호진(Hozin) 형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질문하고, 얘기도 들으면서 찾아갔던 것 같아요.
‘아, 이게 내 모습이구나. 내가 하고 싶은 움직임이구나.‘하면서. 결국은 진짜 자신을 먼저 잘 아는 게 필요해요. 본 모습을 깨닫는 게 중요하고. 나는 이런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과 춤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까.
융 :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요?
아 : 그렇죠. 근데 맞지 않는 옷도 계속 입어봐야 어떤 게 잘 어울리는지도 아는 거니까.
융 : 그럼,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되는 걸까요?
아 : 근데 그 옷이 맞게끔 최대한 움직임을 더해보거나, 체형과 다르게 큰 옷을 좋아하면 거기다 액세서리를 더해보거나. 이런 시도들은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좀 나와의 대화를 많이 해보면 어떨까. 본인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게 필요한지. 저는 코로나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서. 그때 생각을 많이 정리했었던 것 같아요.
융 : 좋네요(미소). 움직임에서의 큰 영향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이신가요?
아 : 아무래도 댄서 동료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얻는 것 같고. 뮤직비디오나 애니메이션, 게임에서도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아디님도 팀 활동이나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계시잖아요. 그 안에는 주로 어떤 부분을 집중해서 담고자 하시나요?
아 : 유쾌한 감정과 에너지를 녹여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팀으로서 하는 활동은 좀 메뉴얼화되어 있다 보니까 지금은 일적으로 다가오는 게 큰 느낌? 영상의 퀄리티는 좋은데, 즐기지 못하는 게 영상을 보시는 분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아서.
요즘 그런 부분이 고민이 되는 것 같고. 연구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냥 되게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콘텐츠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융 : 너무 좋네요(미소). 그렇다면 'EMET SOUND'라는 팀이나 'ADI'라는 활동명으로 정의되지 않는 ‘윤영우‘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 :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후) 뭔가 간단히 표현하면 초딩. 약간...삼춘기? 유치뽕짝. 이런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융 : 오, 그래서 더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고, 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아 : 그렇죠. 근데 또 이게 안좋게 작용할 수도 있는 거니까. 평소에는 이런 면을 꺼두고 사는 것 같아요. 나이도 있다 보니까.
융 : 그렇군요. 그럼, 댄서로 살아오시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아 : 저희 가족은 연말에 매번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를 갖거든요. 그때 사촌 동생이 저한테 배틀을 신청해서 같이 진짜 즐기면서 췄던 기억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도 진짜 좋아해 주시고. ‘아, 이게 행복이구나.‘ 느꼈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춤으로 하나가 되는 걸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융 : 너무 좋네요(미소). 이런 아디님에게도 따로 슬럼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아 : 제가 생각하기에 슬럼프는 자기가 만든 가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멈추지만 않으면 나아가고 있는 건데. 자꾸 남과 비교하니까 자신의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내가 나를 믿어주고. 슬럼프보다는 스스로 ‘정체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성과가 좋지 않으면 ‘뭐, 안되는 시기인가 보다.’하고, 하던 거 계속 하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이겠지.’하면서.
융 : 그렇군요. 그럼, 이렇게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본인만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 : 가족.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이들에게 힘을 얻기도 하고, 이들이 정말 힘들 때 힘이 될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융 : 댄서 ‘ADI‘ 혹은 ‘윤영우‘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 : 저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이 존재가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의미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나중에 저의 아들이나 딸이 “저희 아빠는 춤추는 사람이에요.”가 아니라 “저희 아빠 ’ADI‘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댄서가 되고 싶어요.
융 : 오, 너무 멋지네요(미소). 이제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추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릴게요.
아 : 경쟁이나 시기, 질투보다 자신의 춤, 다른 이의 춤을 사랑으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게 두지 마세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면서 계속 달려가셨으면 좋겠습니다(미소).
자신과 깊이 대화하며, 무대 위에서 가장 투명한 에너지를 쌓아온 ADI.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춤으로 기록해왔다. 함께 나누는 에너지와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멈추지 않는 진심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이 된다.
오늘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나아가고 있을 그의 걸음에 따뜻한 응원이 닿길, 그의 춤이 앞으로도 누군가의 하루에 새로운 영감과 유쾌한 에너지로 스며들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