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건네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움직임을 확장해온 댄서 해니.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주하는 순간마다 솔직한 반응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하나로 규정하기보다 혼란과 변화를 끌어안아 더욱 진실해진 그녀의 움직임. 그 안에 스며든 이야기들을 함께 따라가보자.
인터뷰 上
My Paradox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해 : 안녕하세요, 무브먼트 아티스트(Movement Artist) 해니입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해 : 요즘은 제가 넓혀놓은 스펙트럼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많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지금이 진짜 피크인 것 같아요.
융 : 춤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군요(미소). 이 여정의 시작은 발레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해 : 맞아요, 한 6살 때? 친구 따라갔다가 배우게 된 건데. 그다음에 만난 친구도 어머니가 발레리나셔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까지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1 때 ‘입시를 아예 무용 쪽으로 해볼까?’하고, 학원에 갔는데. “발목이 타고난 게 없다.
현대 무용을 해라.”라고 하셔서 잠깐 배웠는데. 그때 같이 안무도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게 지금의 코레오(Choreography). 당시에는 ‘스타일 힙합‘이라고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LA 스타일 힙합을 영상으로 많이 보다가? ‘아, 그럼 한국에서 배우기보다 그냥 직접 가봐야겠다.‘해서 바로 미국으로 갔죠. 대학교를 안 가고(웃음). 필요한 학교 출석만 다 채우고, 미국으로 갔어요.
융 : 쉽지 않은 결정일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해 : 어릴 때는 성격이 무뎌서. 지금도 무딘 편이긴 한데. 그때는 약간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했던.
융 : 그렇군요. 현지에서 배우시다 보니까 좀 더 이론적인 면에서나 티칭에서 체계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 : 오히려 체계적이지 않았어요.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라고,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 여주인공분이 차리신 오랜 역사를 가진 스튜디오에서 배웠었는데.

안에 크고 작은 홀이 7개가 있어서 모든 수업이 거기서 다 이뤄졌어요. 발레부터 락킹, 팝핑, 안무, 힐 댄스도 있고. 그래서 저도 되게 체계적으로 배울 줄 알았는데 발레는 할머니께서 앉아 가지고 말로 알려주시면 다 따라 하고? 락킹도 그냥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셔서 음악 트시고, 동작 던지시고. 저희는 보면서 캐치해야 하고. 오히려 좋고, 나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았던 건 진짜 몸으로 익히면서 배웠던 것 같고. 나빴던 건 한국에 와서야 제대로 된 용어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웃음).
그렇게 딱 3개월 갔다 왔는데, 돌아오니까 너무 그리운 거예요. 그 트레이닝과 개방적인 분위기가. 한국에서는 제 스타일이 너무 유별난 느낌이었어요. ‘쟤 너무 특이하다.’ 이런 반응이어서. 좀 외로워하다가 아예 학생 비자를 받아서 한 1년 정도? 더 다녀온 것 같아요.
융 : 이런 여러 환경에서의 경험들이 모여, 해니님만의 움직임을 만든 거군요.
해 : 한국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한 장르를 이렇게 파는구나.’를. 미국에서는 친구들이랑 여러 장르를 다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인생을 쭉 돌아보면서 생각해 봤는데. 어릴 때부터 성격이 무뎠던 게 제가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어서이지 않을까. 만들어진 환경에 억눌려 있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그냥 그 안에서 적응을 잘한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장르를 오래 이어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만들고, 기여하고 싶었던 씬도 있었고. ‘이런 걸 해보고 싶다. 이런 변화를 주고 싶다.’했던 것도 있었지만. 환경에 맞춰서 추는 게 괴롭지 않았어요. 한 번도. 그냥 뭐 “지금 이런 상황인데 이런 거 한번 춰볼래?”하면 그렇게 춰보고. 발레 수업 듣게 되면 발레하고, 힙합을 들으면 좀 부족해도? 재밌게 추고. 어렸을 때는 좀 혼란스러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게 강점이 되지 않았나.
융 : 맞아요. 장벽 없이 모든 움직임을 시도하셔서 이렇게 넓게 영역을 전개하신 것 같네요(미소).
해 : 어릴 때는 “이렇게 하면 안 돼. 딱 사람들이 널 봤을 때 생각나는 게 있어야 돼.”이런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머리로는 “아,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아서. ‘내가 이거 하고 싶을 때는 어떡하지?, 저거 하고 싶을 땐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지금은 제가 상업적인 일을 하든, 극장 일을 하든, 배틀을 나가든, 수업을 들으러 오시든 제 에센스는 느끼되? 예측이 불가하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런 것도 이렇게 소화하는구나.’처럼. 그리고 어떤 장르에 임하든 그 씬을 오래 만들어 온 분들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진심을 다해 임하고 싶어요.
융 : 그렇다면 그 과정을 다 소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해 : 변화 자체가 많은 환경에 놓여있어서 그게 익숙하기도 했고, 제일 큰 건 춤 자체를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발레는 이런 느낌이 있어서 좋고, 힙합은 또 이런 느낌이 있어서 좋고. 이게 너무 다 좋아져 버려서(웃음).

융 : 해니님의 움직임은 어떤 언어, 혹은 감정을 띠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모든 댄서분이 이렇게 얘기하실 것 같긴 한데,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감정도 아니고, 직접적인 경험도 아닌 것이. 확실히 해소의 언어이긴 한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아, 결국은 그냥 이렇게 존재하기 위한. 그냥 ‘내가 여기 있다.‘를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을 봤는데. 왜 발을 구르는지 궁금해서 ChatGPT에 물어봤거든요. 근데 그것도 당시 억눌려 있던 여성분들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함이고, 그와 동시에 ‘나 지금 여기 있다.‘를 전하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크럼프도 마찬가지고, 힙합도 마찬가지고. 동작만 다를 뿐, 결국 그 본질 자체가 그냥 이렇게 ‘존재함‘을 알리기 위한 게 아닌가.
융 : 나 여기 존재한다.
해 : 그렇죠. 저도 제 환경에서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추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웃음).
융 : 매 순간 충실히 존재하려고 하셨군요.
해 : 네, 그런 것 같아요(미소).
융 : 이런 해소와 존재를 많은 작품으로 담아오셨는데, 무대를 구성할 때는 어떤 요소에서 출발하는 편이신가요?
해 : 저는 무조건 환경을 먼저 만들어요. 콘셉트. 즉 어떤 노래 혹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을지 상상해 놓고,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거죠. 디테일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그런 기본적인 틀이 있어야 잘 전달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요(미소).
융 : 최근 2025 HARU COMPETITION의 저지쇼 무대죠.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작품을 보며 안무나 연출적인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요. 이 작품의 비하인드도 궁금하네요.

해 : 사실 핀란드에서 선보일 극장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제한된 5분의 시간 안에 담아내야 하니까 이런 무대를 통해서 비주얼적인 거나 ‘아, 이런 게 필요하구나.‘를 파악하는 편이라서. 비하인드라고 하면 이 무대도 컨셉이 먼저 다가온 케이스였어요.
‘무대 스크린에 화면과 무대가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다.’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음악이 왔는데. 음악에서 디테일을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너무 완벽해서. 상대 무용수의 눈을 가리면 스크린이 꺼지는 연출도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융 : 맞아요. 무용수 시점에서 무대나 인물을 보고, 호흡할 수 있다는 게 새롭더라고요.
해 : 사실 저는 진짜 편했고, 남자 주연분이 램프(Lamp)라는 댄서인데 고생을 진짜 많이 했어요.
카메라를 머리에 달고, 움직이니까 이 사람을 어떤 각도로 보는지가 중요했고. 고개를 너무 숙이면 제가 화면에 잘려서 “고개 지금 조금 더 들어야 한다. 이 파트에서 더 숙여야 된다.“하면서. 그런 디테일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융 : 이 무대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해 : 무용수분들께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불안감’이었어요. 램프의 시선에 비친 불안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무대 위의 저는 끝내 공감하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떠나는 내용이죠. 하지만 마지막에는 제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램프의 손을 잡으러 다가오면서. 그런 패러독스(Paradox)를 만들고 싶었어요.
융 : 여전히 혼란 속에 놓여있지만, 그 또한 한 여정이라는 점을 전달하는 걸까요?
해 : 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의도적으로 컨셉을 이해시키기 위해 했던 파트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걸 여유 있게 관객분들이 받아들이실 수 있게끔 시간을 두었지만, 이해 못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웠는데. 딱 그 파트에 호응이 들리니까 램프랑 저랑 둘 다 속으로 ‘됐다. 이제 그냥 하자.’생각했고, 그때 준서 눈빛도 확 바뀌더라고요.
융 :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미소). 그렇다면 움직임에서의 영감이나 영향은 내면에서 많이 찾는 편이신가요?
해 : 맞아요. 어릴 때는 인정을 안 했거든요. 사실 좀 부끄럽잖아요. 이전에는 제 얘기라도 수업할 때는 “저도 이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에 따라 이런 느낌으로 춰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거든요. 요즘에는 “제가 이랬었는데 그래서 이런 의도로 이렇게 춰주셨으면 좋겠다.“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같아요.

융 : 외부에서 영향이나 영감을 받으실 때도 있으세요?
해 : 네. 하지만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결국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외부에서 영감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제 내면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해요.
융 : 자신의 상태를 기반으로 한 끌림이군요.
해 : 무조건인 것 같아요. 감히. 감히 말씀드리면 어떤 걸 보고 영감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게 변형돼서 자신의 스타일로 맞춰지듯이. 그렇게 추고 싶은 이유도 분명히 본인한테 있을 거고.
결국에는 다 ‘나‘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무브먼트 아티스트로서 자유와 통제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가시는지도 궁금한데요.
해 : 이건 꼭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안무가 차진엽 선생님이 “울타리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제게 큰 방향이 되었거든요.
“결국에 돌아올 곳이 있어야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거다. 울타리가 없이 모든 곳에 돌아다니는 건 자유가 아니야. 그건 길을 잃은 거지.“이 말이 너무 와닿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럼, 내 울타리는 뭐지?’하면서 제 패러독스를 많이 정리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정착을 진짜 못했어요. 정말 혼돈의 카오스였죠.
그렇게 울타리를 찾아가면서 루틴화 시키다 보니까 이 혼란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 해니가 저기 갔다 오고 싶은가 본데?’하면 보내고(웃음). ‘저것도 해보고 싶은가 본데?’하면 하게 하고.
인터뷰 下
Beyond the Boundary
융 : 울타리를 세우며 혼란과 균형을 잡아가셨군요. 좋네요. 그럼, 춤을 ‘함께‘하는 것이 ‘잘‘ 추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신가요?
해 : 제가 최근에 처음으로 오디션을 봤거든요. 정말 좋아하는 안무가가 스페인에서 댄서를 모집해서. 근데 오디션 때 이걸 진짜 뼈저리게 느꼈어요. 같이 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안무도 수업 때가 돼서야 진짜 풀 아웃으로 몰입해서 출 수 있는 것 같은데. 혼자 할 때는 이런 에너지를 못 보는 것 같아요.
이게 시선을 의식해서일 수도 있고, 잘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경쟁일 수도 있지만(웃음). 같이 하기 전까지는 절대 못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제 자유고. 울타리는 꼭 혼자 쳐야 되는 것 같아요. 혼자 쳐서 ‘저‘로 돌아와야 다 같이 출 때 더 그 시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
융 : 맞아요. 또, 춤을 나누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만, 결국 함께 춤출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부분에서 해니님이 마주(MAJU)라는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계신데 이 공간을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해 : 마주는 솔직히 제 개인의 필요가 더 크긴 했어요. 걱정 없이 편하게 집처럼 창작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같이 운영하고 계시는 시나(Shina) 언니도 브랜드를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하셔서. 두 니즈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고. 사업적으로도 어떻게 운영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패러독스를 대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웃음). ‘여기서 이런 걸 할 수 있다고?’이런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죠.
그래서 배틀도 하고, 한국에 없었던 행사들 열고. 사람들이 마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확장을 한다면 아무래도 연습실보다는 극장 쪽으로 발전하고 싶은데. 진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막 밴드 공연도 여기서 하는데? 다음 날에는 무용 공연이 열리고. 그런 좀 서로의 세계관이 많이 충돌될 수 있는. 그렇지만 여전히 각 문화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저의 확장형이긴 한 것 같아요. 저를 공간으로 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결국, 브랜드는 그 주인을 따라간다고 하잖아요(미소).

융 : 너무 좋네요. 운영하면서 많은 고민도 생기고, 그 안에서의 보람도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해 : 제일 큰 고민은 사업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인지라 어떻게 해도 존재할 수 있지만, 공간은 저희가 이용해야 되는 거니까. 거기서 오는 고민이 크죠. 근데 이런 부분을 언니가 많이 알려주셨어요. 사업을 해보셨던 분이라 숫자적인 것들? 제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면 “그걸 왜? 어떻게 실현하고 싶은데?” 그런 왜, 어떻게를 계속 던져주시면서 도와주고 계시죠.
또 다른 고민은 ‘공간에서의 룰을 어떻게 하면 잘 지켜지게 만들 수 있을까.’인데. 그래서 저희가 재미로 지휘봉 같은 걸 샀어요.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면 인스타 스토리에 그걸 탁탁 해가지고 업로드하는데. 효과가 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 보니까 그런 민원 발생하는 것? 거기서 오는 고민도 있습니다. 마주의 주의 사항을 꼭 읽어주세요(미소).
융 : (미소). 그럼, 이 공간에서 여러 장르의 교류도 이뤄지고 있을까요?
해 : 그게 저희의 넥스트 스텝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움직이면서 교류를 하지만, 공간에서 그걸 만들어내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워크숍 라인업도 다양하게 확대해 가려고 해요. 1월에는 하우스씬 세나(Saena), 왁킹씬 오션(Ocean)님의 콜라보로 시작해서 더 교류를 이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융 : 좋네요. 해니님의 움직임을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형태의 감정도 전달받을 수 있는데요. 이런 전달을 위한 노하우가 따로 있을까요?
해 : 창작을 할 때는 확실히 디테일하게 설정하거나 ‘전달’에 대해 고민하는데. 제가 출 때만큼은 오히려 동작을 익숙하게 정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그래야 어떤 무대에서든 음악이 주는 감정선을 느끼면서 출 수 있어서. 가장 최근 팀 무대도 의자를 활용한 퍼포먼스가 있었거든요. 근데 다 너무 어려운 동작들이어서 동작을 완벽히 맞추는 작업을 먼저 했어요.
그렇게 몸이 알아서 움직이게 해놓고, 의식을 좀 떼는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느끼는지, 느껴야 하는지를 정해놓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고.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전하려고 하기보다 온전히 그냥 보고 반응하실 수 있도록 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배틀이나 대회의 저지, 수업 티칭을 진행할 때는 각각 어떤 부분을 중시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심사는 최대한 공평하게 점수를 주려다 보니까 점수를 매기기 전에 저만의 등수를 적거든요. 등수를 다 적고, 점수를 주는데. 그게 30팀이 넘어가면 힘들어져서. 20팀 미만은 그렇게 심사를 해서 최대한 공평하되 제 시야에서 뭐가 부족한지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는 완전 반대로 이들이 각자 성장하게 두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제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스승의 날 때 조금 외롭죠(미소). 자주 보는 친구들은 있지만. 이게 어떻게 보면 책임 회피일 수도 있는데. 제가 그 친구들의 성장을 책임지는 것도 약간 말이 안 된다고 느끼고. 제가 자라온 환경이 워낙 그렇다 보니까. 수업 안에서 제가 줄 수 있는 건 모두 전하려고 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 더 넓은 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보내주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융 :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해니님께 진심이니까요(미소). 그렇다면 이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가장 솔직했던 작업,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 :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미스터 크리스(Mr.Kriss)라는 체코 친구와 함께한 작품이었는데. ‘그만큼 솔직한 때가 있었나.’싶을 정도로 되게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만든 무대여서. 그냥 현재 느껴지는 대로 서로를 믿으면서 뿜어낸 무대였어요. 1시간 무대였는데 창작 기간이 일주일밖에 없다 보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기도 했는데(웃음). 컨셉 자체도 저의 그런 패러독스를 많이 보여주는 무대였고. 크리스도 저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여서. 접점이 많았죠.

정말 행복한 정도가 그냥 100% 진심이었어요. 제가 사실 뒤풀이도 잘 안 가고, 작품 외에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되게 어색해하는 스타일인데. <OO-LI 우리>때는 집에 가기 싫었어요. 무대 감독님, 조명 감독님, 프로듀서님 다 뒤풀이에 남아서 계속 대화하시고(미소). 그 정도로 행복했고, 좋았던 기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면서 진엽쌤에게 배웠던 것만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무대 오디션이 한국에서 열리다 보니까 제가 아는 분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예를 들어, 어떤 A라는 친구가 컨디션 문제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도 결국 몸이 괜찮으면 잘할 거라는 걸 아는 거죠. 그니까 선택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다 잘하는 친구들이고. 너무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근데 그때 크리스가 아는 분이 딱 한 분 오셨거든요. 너무 잘하시는 분인데. 크리스가 1차부터 바로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분 진짜 잘하는 분인데 왜 그러냐.”물었는데. 그분이 좀 부끄러워하셨거든요? 나쁜 에너지는 아니었는데. 부끄러워하다 보니까 계속 뒤에 계셨는데. 크리스가 “나는 그의 과거만을 알고, 미래는 내 예측이다. 현재 그 사람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나 또한 합격을 줄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아, 그렇지. 내가 그걸 추측하고 뽑으면 안 되지. 지금 이곳에서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뽑아야지.’하고 보니까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러고 바로 다다음 날이 다 같이 만나는 리서치 데이였는데. 에너지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판단이 맞았던 거고. 그래서 좀 현재에 집중하는 시각을 많이 배웠죠.
융 : 너무 인상적이네요. 그럼, 이런 해니님에게도 ‘슬럼프‘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보내셨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정확히 2017년에 엄청 크게 왔었는데. 그때는 저의 그런 패러독스를 통제하지 못할 때였고. 바운더리 셋업도 못할 때였어요. 그런 경계 없이 막 이것저것 갈리면서 하던 시기였는데. 마지막 일정이었던 일본에서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공연을 보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거예요. 옆에 다른 친구들은 막 울고 있는데. 그때 엄청 혼란이 왔고, 수업을 해도 재미있지 않았어요. 그때 많이 뼈저리게 느꼈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냥 안 추고 싶으면 안 췄어요. 그런 시간을 갖고, 제 울타리도 점점 알게 되면서 이제 춤에서의 슬럼프는 없어진 것 같아요. 진짜 안 추고 싶을 때는 안 추셔야 돼요. 그래야 추고 싶을 때 더 막 진심을 담아서 출 수 있으니까.
제가 아는 친구는 추고 싶을 때도 안 추는 연습을 하더라고요. 실제로 한국에 와서 워크샵을 들었는데 “진짜 끝내주는 음악을 틀 테니까 추지 말아 봐.”하면 정말 미동 없이 가만히 있다가. 그다음에는 “이번에는 한 50%만 움직이게 해줄게요.”하면 이 정도도 좋아서 막 춰요. 그러다 마지막에 “이제 자유롭게 춰봐.”하면 막 사람들이 미쳐서 추는 거예요. 같은 노래인데도. 그래서 ‘아, 이게 그 울타리가 아닌가. 자기 통제가 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융 : 새로운 접근이네요. 견고한 바운더리 속에서 이렇게 많은 경험과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하고 계신 만큼 앞으로의 해니님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실지 궁금하네요.
해 : 저는 저의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게 예민해서 더 슬럼프가 없는 것 같아요. ‘아, 지금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게 느껴져서. 좀 힘들어도 ‘이게 다 변화를 위해서 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요즘엔 좀 더 극장 씬에 자리 잡기 위한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번에 핀란드에서 맡게 된 공연이 국립발레단을 캐스팅해서 제 움직임을 입히는 작업이다 보니까. 다시 돌아온 기분이에요. 제 태초의 움직임이었던 발레를 다시 만나서. 그게 좀 새롭게 다가오고 있고. 앞으로도 여러 갈래의 변화를 감지하고, 따라가며 흘러가지 않을까(미소).

융 : 너무 기대되네요(미소). 그렇다면 해니로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 : 계속해서 저를 확장해 나가고 싶고. “얘가 이런 것도 하네.” 이런 인정을 계속 받고 싶고. 저 자신을 더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결국, 이 모든 걸 담은 꿈은 그냥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돼서 저의 기록들, 일기장을 다시 읽는 것. 손자, 손녀들에게 지겹게 알려주고 싶고.
“할머니가 그 얘기 했었잖아요.”이러면 “너희 아티스트 어셔(Usher)라고 알아? 할미가 안무도 짜줬어.”이러면서(웃음) 살고 싶습니다.
융 : 너무 좋네요(미소).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을 추는 이들 혹은 지금 자신의 울타리를 찾고 있는 분들께 건네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릴게요.
해 : 결국은 어느 시점에 다 이루실 것 같긴 한데. 저한테 정말 도움이 됐던 건 춤 이전에 저를 듣는 거예요. 의식을 살짝 띄워서 자신을 본다고 생각하고. 진짜 뭘 하고 싶은지.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싶은지 듣는 법을 먼저 연습하면 춤도 자연스럽게 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고민도 자연스레 없어지지 않을까.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를 좀 더 솔직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팀원들이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있는데. ‘두려움이 느껴지는 곳이 무조건 정답이다.’라고. 무조건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나눴었거든요. 각자의 두려움을 이겨내서 원하는 것을 잘 실현하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더더욱 개인의 목표를 이루기 최적화된 시대잖아요. AI가 도와주고, 춤도 너무 유명해졌고. 경제 시장도 크니까. 그냥 진짜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실현해야 하지?’를 더 고민해서 잘 존재하셨으면 좋겠습니다(미소).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를 듣고, 그 감각을 다시 세상으로 건네온 해니. 함께 움직이는 순간을 믿고, 현재의 에너지를 선택해온 시간들이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자신만의 속도로 다음 장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해니의 여정에 따뜻한 마음이 머물길. 그녀의 움직임이 앞으로도 존재의 흔적으로 머물다,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용기가 되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해니
감각이 건네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움직임을 확장해온 댄서 해니.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주하는 순간마다 솔직한 반응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하나로 규정하기보다 혼란과 변화를 끌어안아 더욱 진실해진 그녀의 움직임. 그 안에 스며든 이야기들을 함께 따라가보자.
인터뷰 上
My Paradox
융 :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해 : 안녕하세요, 무브먼트 아티스트(Movement Artist) 해니입니다.
융 : 반갑습니다(미소). 요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해 : 요즘은 제가 넓혀놓은 스펙트럼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많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지금이 진짜 피크인 것 같아요.
융 : 춤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군요(미소). 이 여정의 시작은 발레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해 : 맞아요, 한 6살 때? 친구 따라갔다가 배우게 된 건데. 그다음에 만난 친구도 어머니가 발레리나셔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까지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1 때 ‘입시를 아예 무용 쪽으로 해볼까?’하고, 학원에 갔는데. “발목이 타고난 게 없다.
현대 무용을 해라.”라고 하셔서 잠깐 배웠는데. 그때 같이 안무도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게 지금의 코레오(Choreography). 당시에는 ‘스타일 힙합‘이라고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LA 스타일 힙합을 영상으로 많이 보다가? ‘아, 그럼 한국에서 배우기보다 그냥 직접 가봐야겠다.‘해서 바로 미국으로 갔죠. 대학교를 안 가고(웃음). 필요한 학교 출석만 다 채우고, 미국으로 갔어요.
융 : 쉽지 않은 결정일 것 같은데 대단하시네요.
해 : 어릴 때는 성격이 무뎌서. 지금도 무딘 편이긴 한데. 그때는 약간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했던.
융 : 그렇군요. 현지에서 배우시다 보니까 좀 더 이론적인 면에서나 티칭에서 체계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 : 오히려 체계적이지 않았어요.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라고,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 여주인공분이 차리신 오랜 역사를 가진 스튜디오에서 배웠었는데.
안에 크고 작은 홀이 7개가 있어서 모든 수업이 거기서 다 이뤄졌어요. 발레부터 락킹, 팝핑, 안무, 힐 댄스도 있고. 그래서 저도 되게 체계적으로 배울 줄 알았는데 발레는 할머니께서 앉아 가지고 말로 알려주시면 다 따라 하고? 락킹도 그냥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셔서 음악 트시고, 동작 던지시고. 저희는 보면서 캐치해야 하고. 오히려 좋고, 나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았던 건 진짜 몸으로 익히면서 배웠던 것 같고. 나빴던 건 한국에 와서야 제대로 된 용어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웃음).
그렇게 딱 3개월 갔다 왔는데, 돌아오니까 너무 그리운 거예요. 그 트레이닝과 개방적인 분위기가. 한국에서는 제 스타일이 너무 유별난 느낌이었어요. ‘쟤 너무 특이하다.’ 이런 반응이어서. 좀 외로워하다가 아예 학생 비자를 받아서 한 1년 정도? 더 다녀온 것 같아요.
융 : 이런 여러 환경에서의 경험들이 모여, 해니님만의 움직임을 만든 거군요.
해 : 한국 와서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한 장르를 이렇게 파는구나.’를. 미국에서는 친구들이랑 여러 장르를 다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인생을 쭉 돌아보면서 생각해 봤는데. 어릴 때부터 성격이 무뎠던 게 제가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어서이지 않을까. 만들어진 환경에 억눌려 있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그냥 그 안에서 적응을 잘한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장르를 오래 이어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만들고, 기여하고 싶었던 씬도 있었고. ‘이런 걸 해보고 싶다. 이런 변화를 주고 싶다.’했던 것도 있었지만. 환경에 맞춰서 추는 게 괴롭지 않았어요. 한 번도. 그냥 뭐 “지금 이런 상황인데 이런 거 한번 춰볼래?”하면 그렇게 춰보고. 발레 수업 듣게 되면 발레하고, 힙합을 들으면 좀 부족해도? 재밌게 추고. 어렸을 때는 좀 혼란스러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게 강점이 되지 않았나.
융 : 맞아요. 장벽 없이 모든 움직임을 시도하셔서 이렇게 넓게 영역을 전개하신 것 같네요(미소).
해 : 어릴 때는 “이렇게 하면 안 돼. 딱 사람들이 널 봤을 때 생각나는 게 있어야 돼.”이런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머리로는 “아,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아서. ‘내가 이거 하고 싶을 때는 어떡하지?, 저거 하고 싶을 땐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지금은 제가 상업적인 일을 하든, 극장 일을 하든, 배틀을 나가든, 수업을 들으러 오시든 제 에센스는 느끼되? 예측이 불가하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런 것도 이렇게 소화하는구나.’처럼. 그리고 어떤 장르에 임하든 그 씬을 오래 만들어 온 분들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진심을 다해 임하고 싶어요.
융 : 그렇다면 그 과정을 다 소화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해 : 변화 자체가 많은 환경에 놓여있어서 그게 익숙하기도 했고, 제일 큰 건 춤 자체를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발레는 이런 느낌이 있어서 좋고, 힙합은 또 이런 느낌이 있어서 좋고. 이게 너무 다 좋아져 버려서(웃음).
융 : 해니님의 움직임은 어떤 언어, 혹은 감정을 띠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모든 댄서분이 이렇게 얘기하실 것 같긴 한데, 말로 다 표현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감정도 아니고, 직접적인 경험도 아닌 것이. 확실히 해소의 언어이긴 한 것 같아요.
근데 요즘은 ‘아, 결국은 그냥 이렇게 존재하기 위한. 그냥 ‘내가 여기 있다.‘를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을 봤는데. 왜 발을 구르는지 궁금해서 ChatGPT에 물어봤거든요. 근데 그것도 당시 억눌려 있던 여성분들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함이고, 그와 동시에 ‘나 지금 여기 있다.‘를 전하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크럼프도 마찬가지고, 힙합도 마찬가지고. 동작만 다를 뿐, 결국 그 본질 자체가 그냥 이렇게 ‘존재함‘을 알리기 위한 게 아닌가.
융 : 나 여기 존재한다.
해 : 그렇죠. 저도 제 환경에서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추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웃음).
융 : 매 순간 충실히 존재하려고 하셨군요.
해 : 네, 그런 것 같아요(미소).
융 : 이런 해소와 존재를 많은 작품으로 담아오셨는데, 무대를 구성할 때는 어떤 요소에서 출발하는 편이신가요?
해 : 저는 무조건 환경을 먼저 만들어요. 콘셉트. 즉 어떤 노래 혹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을지 상상해 놓고,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거죠. 디테일한 환경은 아니더라도 그런 기본적인 틀이 있어야 잘 전달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요(미소).
융 : 최근 2025 HARU COMPETITION의 저지쇼 무대죠.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작품을 보며 안무나 연출적인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요. 이 작품의 비하인드도 궁금하네요.
해 : 사실 핀란드에서 선보일 극장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제한된 5분의 시간 안에 담아내야 하니까 이런 무대를 통해서 비주얼적인 거나 ‘아, 이런 게 필요하구나.‘를 파악하는 편이라서. 비하인드라고 하면 이 무대도 컨셉이 먼저 다가온 케이스였어요.
‘무대 스크린에 화면과 무대가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다.’가 먼저 오고? 그다음에 음악이 왔는데. 음악에서 디테일을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너무 완벽해서. 상대 무용수의 눈을 가리면 스크린이 꺼지는 연출도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융 : 맞아요. 무용수 시점에서 무대나 인물을 보고, 호흡할 수 있다는 게 새롭더라고요.
해 : 사실 저는 진짜 편했고, 남자 주연분이 램프(Lamp)라는 댄서인데 고생을 진짜 많이 했어요.
카메라를 머리에 달고, 움직이니까 이 사람을 어떤 각도로 보는지가 중요했고. 고개를 너무 숙이면 제가 화면에 잘려서 “고개 지금 조금 더 들어야 한다. 이 파트에서 더 숙여야 된다.“하면서. 그런 디테일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융 : 이 무대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해 : 무용수분들께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불안감’이었어요. 램프의 시선에 비친 불안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무대 위의 저는 끝내 공감하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떠나는 내용이죠. 하지만 마지막에는 제가 여전히 그림자처럼 램프의 손을 잡으러 다가오면서. 그런 패러독스(Paradox)를 만들고 싶었어요.
융 : 여전히 혼란 속에 놓여있지만, 그 또한 한 여정이라는 점을 전달하는 걸까요?
해 : 네,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의도적으로 컨셉을 이해시키기 위해 했던 파트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걸 여유 있게 관객분들이 받아들이실 수 있게끔 시간을 두었지만, 이해 못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웠는데. 딱 그 파트에 호응이 들리니까 램프랑 저랑 둘 다 속으로 ‘됐다. 이제 그냥 하자.’생각했고, 그때 준서 눈빛도 확 바뀌더라고요.
융 :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미소). 그렇다면 움직임에서의 영감이나 영향은 내면에서 많이 찾는 편이신가요?
해 : 맞아요. 어릴 때는 인정을 안 했거든요. 사실 좀 부끄럽잖아요. 이전에는 제 얘기라도 수업할 때는 “저도 이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에 따라 이런 느낌으로 춰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거든요. 요즘에는 “제가 이랬었는데 그래서 이런 의도로 이렇게 춰주셨으면 좋겠다.“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같아요.
융 : 외부에서 영향이나 영감을 받으실 때도 있으세요?
해 : 네. 하지만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결국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이, 외부에서 영감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제 내면을 통해 나온다고 생각해요.
융 : 자신의 상태를 기반으로 한 끌림이군요.
해 : 무조건인 것 같아요. 감히. 감히 말씀드리면 어떤 걸 보고 영감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게 변형돼서 자신의 스타일로 맞춰지듯이. 그렇게 추고 싶은 이유도 분명히 본인한테 있을 거고.
결국에는 다 ‘나‘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무브먼트 아티스트로서 자유와 통제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가시는지도 궁금한데요.
해 : 이건 꼭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안무가 차진엽 선생님이 “울타리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제게 큰 방향이 되었거든요.
“결국에 돌아올 곳이 있어야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거다. 울타리가 없이 모든 곳에 돌아다니는 건 자유가 아니야. 그건 길을 잃은 거지.“이 말이 너무 와닿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럼, 내 울타리는 뭐지?’하면서 제 패러독스를 많이 정리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정착을 진짜 못했어요. 정말 혼돈의 카오스였죠.
그렇게 울타리를 찾아가면서 루틴화 시키다 보니까 이 혼란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아, 해니가 저기 갔다 오고 싶은가 본데?’하면 보내고(웃음). ‘저것도 해보고 싶은가 본데?’하면 하게 하고.
인터뷰 下
Beyond the Boundary
융 : 울타리를 세우며 혼란과 균형을 잡아가셨군요. 좋네요. 그럼, 춤을 ‘함께‘하는 것이 ‘잘‘ 추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신가요?
해 : 제가 최근에 처음으로 오디션을 봤거든요. 정말 좋아하는 안무가가 스페인에서 댄서를 모집해서. 근데 오디션 때 이걸 진짜 뼈저리게 느꼈어요. 같이 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안무도 수업 때가 돼서야 진짜 풀 아웃으로 몰입해서 출 수 있는 것 같은데. 혼자 할 때는 이런 에너지를 못 보는 것 같아요.
이게 시선을 의식해서일 수도 있고, 잘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경쟁일 수도 있지만(웃음). 같이 하기 전까지는 절대 못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제 자유고. 울타리는 꼭 혼자 쳐야 되는 것 같아요. 혼자 쳐서 ‘저‘로 돌아와야 다 같이 출 때 더 그 시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
융 : 맞아요. 또, 춤을 나누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만, 결국 함께 춤출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부분에서 해니님이 마주(MAJU)라는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계신데 이 공간을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그래서 배틀도 하고, 한국에 없었던 행사들 열고. 사람들이 마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확장을 한다면 아무래도 연습실보다는 극장 쪽으로 발전하고 싶은데. 진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막 밴드 공연도 여기서 하는데? 다음 날에는 무용 공연이 열리고. 그런 좀 서로의 세계관이 많이 충돌될 수 있는. 그렇지만 여전히 각 문화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저의 확장형이긴 한 것 같아요. 저를 공간으로 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결국, 브랜드는 그 주인을 따라간다고 하잖아요(미소).
융 : 너무 좋네요. 운영하면서 많은 고민도 생기고, 그 안에서의 보람도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해 : 제일 큰 고민은 사업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인지라 어떻게 해도 존재할 수 있지만, 공간은 저희가 이용해야 되는 거니까. 거기서 오는 고민이 크죠. 근데 이런 부분을 언니가 많이 알려주셨어요. 사업을 해보셨던 분이라 숫자적인 것들? 제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면 “그걸 왜? 어떻게 실현하고 싶은데?” 그런 왜, 어떻게를 계속 던져주시면서 도와주고 계시죠.
또 다른 고민은 ‘공간에서의 룰을 어떻게 하면 잘 지켜지게 만들 수 있을까.’인데. 그래서 저희가 재미로 지휘봉 같은 걸 샀어요.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면 인스타 스토리에 그걸 탁탁 해가지고 업로드하는데. 효과가 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다 보니까 그런 민원 발생하는 것? 거기서 오는 고민도 있습니다. 마주의 주의 사항을 꼭 읽어주세요(미소).
융 : (미소). 그럼, 이 공간에서 여러 장르의 교류도 이뤄지고 있을까요?
해 : 그게 저희의 넥스트 스텝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움직이면서 교류를 하지만, 공간에서 그걸 만들어내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워크숍 라인업도 다양하게 확대해 가려고 해요. 1월에는 하우스씬 세나(Saena), 왁킹씬 오션(Ocean)님의 콜라보로 시작해서 더 교류를 이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융 : 좋네요. 해니님의 움직임을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형태의 감정도 전달받을 수 있는데요. 이런 전달을 위한 노하우가 따로 있을까요?
해 : 창작을 할 때는 확실히 디테일하게 설정하거나 ‘전달’에 대해 고민하는데. 제가 출 때만큼은 오히려 동작을 익숙하게 정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그래야 어떤 무대에서든 음악이 주는 감정선을 느끼면서 출 수 있어서. 가장 최근 팀 무대도 의자를 활용한 퍼포먼스가 있었거든요. 근데 다 너무 어려운 동작들이어서 동작을 완벽히 맞추는 작업을 먼저 했어요.
그렇게 몸이 알아서 움직이게 해놓고, 의식을 좀 떼는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느끼는지, 느껴야 하는지를 정해놓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고.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전하려고 하기보다 온전히 그냥 보고 반응하실 수 있도록 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융 : 그렇군요. 그럼, 배틀이나 대회의 저지, 수업 티칭을 진행할 때는 각각 어떤 부분을 중시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심사는 최대한 공평하게 점수를 주려다 보니까 점수를 매기기 전에 저만의 등수를 적거든요. 등수를 다 적고, 점수를 주는데. 그게 30팀이 넘어가면 힘들어져서. 20팀 미만은 그렇게 심사를 해서 최대한 공평하되 제 시야에서 뭐가 부족한지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는 완전 반대로 이들이 각자 성장하게 두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제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스승의 날 때 조금 외롭죠(미소). 자주 보는 친구들은 있지만. 이게 어떻게 보면 책임 회피일 수도 있는데. 제가 그 친구들의 성장을 책임지는 것도 약간 말이 안 된다고 느끼고. 제가 자라온 환경이 워낙 그렇다 보니까. 수업 안에서 제가 줄 수 있는 건 모두 전하려고 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 더 넓은 세상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보내주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융 :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해니님께 진심이니까요(미소). 그렇다면 이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가장 솔직했던 작업,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 :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미스터 크리스(Mr.Kriss)라는 체코 친구와 함께한 작품이었는데. ‘그만큼 솔직한 때가 있었나.’싶을 정도로 되게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만든 무대여서. 그냥 현재 느껴지는 대로 서로를 믿으면서 뿜어낸 무대였어요. 1시간 무대였는데 창작 기간이 일주일밖에 없다 보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기도 했는데(웃음). 컨셉 자체도 저의 그런 패러독스를 많이 보여주는 무대였고. 크리스도 저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여서. 접점이 많았죠.
정말 행복한 정도가 그냥 100% 진심이었어요. 제가 사실 뒤풀이도 잘 안 가고, 작품 외에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되게 어색해하는 스타일인데. <OO-LI 우리>때는 집에 가기 싫었어요. 무대 감독님, 조명 감독님, 프로듀서님 다 뒤풀이에 남아서 계속 대화하시고(미소). 그 정도로 행복했고, 좋았던 기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면서 진엽쌤에게 배웠던 것만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무대 오디션이 한국에서 열리다 보니까 제가 아는 분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예를 들어, 어떤 A라는 친구가 컨디션 문제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도 결국 몸이 괜찮으면 잘할 거라는 걸 아는 거죠. 그니까 선택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다 잘하는 친구들이고. 너무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근데 그때 크리스가 아는 분이 딱 한 분 오셨거든요. 너무 잘하시는 분인데. 크리스가 1차부터 바로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분 진짜 잘하는 분인데 왜 그러냐.”물었는데. 그분이 좀 부끄러워하셨거든요? 나쁜 에너지는 아니었는데. 부끄러워하다 보니까 계속 뒤에 계셨는데. 크리스가 “나는 그의 과거만을 알고, 미래는 내 예측이다. 현재 그 사람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나 또한 합격을 줄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아, 그렇지. 내가 그걸 추측하고 뽑으면 안 되지. 지금 이곳에서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뽑아야지.’하고 보니까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러고 바로 다다음 날이 다 같이 만나는 리서치 데이였는데. 에너지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판단이 맞았던 거고. 그래서 좀 현재에 집중하는 시각을 많이 배웠죠.
융 : 너무 인상적이네요. 그럼, 이런 해니님에게도 ‘슬럼프‘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보내셨는지도 궁금하네요.
해 : 정확히 2017년에 엄청 크게 왔었는데. 그때는 저의 그런 패러독스를 통제하지 못할 때였고. 바운더리 셋업도 못할 때였어요. 그런 경계 없이 막 이것저것 갈리면서 하던 시기였는데. 마지막 일정이었던 일본에서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공연을 보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거예요. 옆에 다른 친구들은 막 울고 있는데. 그때 엄청 혼란이 왔고, 수업을 해도 재미있지 않았어요. 그때 많이 뼈저리게 느꼈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냥 안 추고 싶으면 안 췄어요. 그런 시간을 갖고, 제 울타리도 점점 알게 되면서 이제 춤에서의 슬럼프는 없어진 것 같아요. 진짜 안 추고 싶을 때는 안 추셔야 돼요. 그래야 추고 싶을 때 더 막 진심을 담아서 출 수 있으니까.
제가 아는 친구는 추고 싶을 때도 안 추는 연습을 하더라고요. 실제로 한국에 와서 워크샵을 들었는데 “진짜 끝내주는 음악을 틀 테니까 추지 말아 봐.”하면 정말 미동 없이 가만히 있다가. 그다음에는 “이번에는 한 50%만 움직이게 해줄게요.”하면 이 정도도 좋아서 막 춰요. 그러다 마지막에 “이제 자유롭게 춰봐.”하면 막 사람들이 미쳐서 추는 거예요. 같은 노래인데도. 그래서 ‘아, 이게 그 울타리가 아닌가. 자기 통제가 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융 : 새로운 접근이네요. 견고한 바운더리 속에서 이렇게 많은 경험과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하고 계신 만큼 앞으로의 해니님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실지 궁금하네요.
해 : 저는 저의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게 예민해서 더 슬럼프가 없는 것 같아요. ‘아, 지금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게 느껴져서. 좀 힘들어도 ‘이게 다 변화를 위해서 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요즘엔 좀 더 극장 씬에 자리 잡기 위한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번에 핀란드에서 맡게 된 공연이 국립발레단을 캐스팅해서 제 움직임을 입히는 작업이다 보니까. 다시 돌아온 기분이에요. 제 태초의 움직임이었던 발레를 다시 만나서. 그게 좀 새롭게 다가오고 있고. 앞으로도 여러 갈래의 변화를 감지하고, 따라가며 흘러가지 않을까(미소).
융 : 너무 기대되네요(미소). 그렇다면 해니로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 : 계속해서 저를 확장해 나가고 싶고. “얘가 이런 것도 하네.” 이런 인정을 계속 받고 싶고. 저 자신을 더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결국, 이 모든 걸 담은 꿈은 그냥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돼서 저의 기록들, 일기장을 다시 읽는 것. 손자, 손녀들에게 지겹게 알려주고 싶고.
“할머니가 그 얘기 했었잖아요.”이러면 “너희 아티스트 어셔(Usher)라고 알아? 할미가 안무도 짜줬어.”이러면서(웃음) 살고 싶습니다.
융 : 너무 좋네요(미소).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네요. 춤을 추는 이들 혹은 지금 자신의 울타리를 찾고 있는 분들께 건네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편하게 말씀 부탁드릴게요.
해 : 결국은 어느 시점에 다 이루실 것 같긴 한데. 저한테 정말 도움이 됐던 건 춤 이전에 저를 듣는 거예요. 의식을 살짝 띄워서 자신을 본다고 생각하고. 진짜 뭘 하고 싶은지.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싶은지 듣는 법을 먼저 연습하면 춤도 자연스럽게 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고민도 자연스레 없어지지 않을까.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를 좀 더 솔직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팀원들이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있는데. ‘두려움이 느껴지는 곳이 무조건 정답이다.’라고. 무조건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나눴었거든요. 각자의 두려움을 이겨내서 원하는 것을 잘 실현하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더더욱 개인의 목표를 이루기 최적화된 시대잖아요. AI가 도와주고, 춤도 너무 유명해졌고. 경제 시장도 크니까. 그냥 진짜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실현해야 하지?’를 더 고민해서 잘 존재하셨으면 좋겠습니다(미소).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를 듣고, 그 감각을 다시 세상으로 건네온 해니. 함께 움직이는 순간을 믿고, 현재의 에너지를 선택해온 시간들이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자신만의 속도로 다음 장면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해니의 여정에 따뜻한 마음이 머물길. 그녀의 움직임이 앞으로도 존재의 흔적으로 머물다,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용기가 되길 바란다.
기획 및 편집ㅣ유영매거진
인터뷰이ㅣ해니